오피니언 사설

官이 발목잡아 무산된 기업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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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공장 건설과 함께 자족적 도시를 함께 만드는 기업도시 계획이 사실상 무산될 상황이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일대에 삼성이 액정표시장치(LCD) 공장과 함께 연관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도시 개발에 따른 이익을 둘러싼 특혜 시비 등을 우려해 건설교통부가 개발계획을 불허하자 삼성은 개발 규모를 65만평 규모로 줄인 수정안을 최근 새로 제출했다. 원래 계획했던 기업도시를 포기하고 일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후퇴한 것이다.

올해 초 전경련이 기업도시 구상을 밝혔을 때 경제전문가들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열린우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기업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업도시를 통해 투자 확대에 따른 고용 창출, 주택문제 해결, 지역 균형발전 등 일석삼조의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교부는 관련 법률을 들어 기업도시 계획을 반대했다. 개발이익에 대한 특혜 시비를 의식한 조치라고 한다. 또 건교부가 계획하고 있는 아산 신도시와 중복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기업도시 건설은 기존의 정부 주도 개발계획을 한 차원 높인 발상이다. 사실 국토의 균형발전은 정부가 예산을 들여 할 일인데, 기업이 기업도시 건설을 통해 이를 대신하겠다고 나선다면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일이다. 개발이익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일이 아니라 사업 주체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면 절충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이 닥친 것은 결국 관(官) 주도의 사고방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조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기업을 죄인시하는 심리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외국 기업의 투자에 대해선 현금 보조까지 해주면서,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규제로 발을 묶어 놓으니 어떻게 경쟁력을 가지겠는가. 이런 환경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 탈출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