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한국영화, 영국서도 바람 일으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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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Old Boy)'가 지난 19일 저녁 런던 시내 중심가 런던정경대 학생회관에서 상영됐다.

성공회 단체인 KACC(한.영 커뮤니티센터)가 주최한 '런던코리안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나다. 300여석 정도의 강당이 만원이 되고서도 영화가 시작되지 않았다. 계속 밀려드는 젊은 손님들이 마침내 통로와 계단까지 모두 점령하고서야 장내는 정리됐다.

상영시간 30-40분 전 학생회관 바깥에 줄이 만들어질 때부터 주최 측은 "너무 많이 왔다"고 걱정했다. 무료상영임을 감안하더라도 냉방.환기가 잘 안되는 찜통 같은 강당, 칠판만한 임시 스크린, 대사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부실한 음향시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밀려들 정도면 대성황이다. 외국인 관객들은 영어 자막으로 줄거리를 따라잡으면서 잔혹한 장면엔 공포와 탄식을 뱉어내기 바빴다.

지난 5일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시내 작은 영화관에서 시사회를 했다. 중국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문화 비정부기구(NGO)인 아시아하우스가 한국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만든 자리다. 아시아에 관심 있는 영국인들이 많이 참석했다. 호수 위에 뜬 절간에서 일어나는 업보와 윤회를 잔잔한 영상으로 그린 작품이라 자칫 외국인에겐 지루하기 쉽다. 자막도 없다. 하지만 잘 짜인 그림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선(禪)불교 삽화인지라 관객들의 눈길을 집중시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객석에서 "환상적이다""특출하다"는 반응이 터져나오더니만 며칠 뒤 영국 내 최고 권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극찬을 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별 2~3개를 받았는데 '봄…'은 4개를 받아 첫머리에 올랐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삶에 대해 더 깊고 진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훌륭한 영화가 아니겠는가"라고 평했다.

박찬욱.김기덕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젊은 감독들이다. 외국에서도 막 팬들이 생기고 있다. 거창하고 요란한 어떤 것들보다 피부에 와닿는 한국문화 알리기, 한국 위상 높이기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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