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탄신600주년심층점검>1.사전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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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백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오는 5월15일(음력 4월10일)탄신일을 맞아 한국어 관련 단체들은 기념행사 준비에 바쁘다.세종은 세계적으로 그 과학성을 인정받는.

한글'을 창제함으로써.한국어'를 발전시키는등 우리 민족문화 창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를 계기로 한국어의 현황과 기념행사의 방향을 미리 짚어본다.

[편집자註] 1.사전 이대로 좋은가 2.한국어 전산화 문제있다3.문화상품화 어디까지 왔나 4.교육 기초가 부실하다 5.해외보급 너무 소홀하다 6.한글전용 과연 만능인가 7.남북한 표준발음 통합안 만들자 8.한글 로마자 표기 바꿔야 하나 말을 하고 글을 짓는 모든 행위와 결과를 언어문화라고 할 때 사전은 바로 민족의 언어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한국어 사전은 우리 언어 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간직하고 알려주는 문헌이다.우리 말을 우리 글로 풀이한 사전 편 찬은 1910년께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시도한.말모아'(미완성 원고) 편찬에서 비롯했다.이후 문세영저.조선어사전'(1938)과 한글학회가지은.큰사전'(1929~57)이 간행돼 오늘날 우리 사전들의 바탕이 됐다.

흔히 영어 사전의 첫 결정판이라고 하는.옥스퍼드 영어사전'은1884~1928년에 첫 판이 나왔다.우리 사전 편찬의 첫 시도가 그 시기로 보아 다른 나라에 그렇게 뒤진 것은 아니었으나그 준비와 규모,편찬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있 었다.이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는 언어 교육과 더불어 사전 편찬에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최근에는 40만 어휘가 넘는 대사전들도 나왔고,뜻풀이 사전.표준말 맞춤법 사전.방언 사전.옛말 사전.

발음 사전.속담 사전.유의어 또는 어휘 분류 사전 등 20여 분야별 특수 사전들도 보게 됐으니 규모면에서는 대단한 성과라고하겠다.그런데도 정작 모르는 어휘를 찾아보면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많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을 본다.이 가운데는 우리의 고전을 비롯한 현대 문예 작품에 나타나는 독특한 낱말이나 말마디들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하는 이도 있고, 또는 우리 전통의 산업.예술.체육.놀이 등에 관련된 용어들을 두루 찾아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이도 있다.

그동안의 국어 사전 편찬이 세계 백과 사전적 성격을 어우르다보니 각 지역의 토박이 방언을 비롯해 민족 문학이나 전통 문화에 관련된 어휘를 집중적으로 섭렵하지 못한 데 대한 따가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그런가 하면 나날이 신문.잡 지 등에 나타나는 새 어휘를 검토.수용하는 데도 노력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언어 사전은 특히 말 하나하나에 대한 정확한 됨됨이와 뜻을 밝히고 바른 쓰임을 보여주는 책이다.되도록 말수가 많아야하고,그 많은 말을 갈피짓는 분석과 체계가 뚜렷해야 한다.말수가 많되 민족어의 본바탕 말이 많아야 하고,분석과 풀 이가 정확하되 쉽고 간결함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이런 점에서 아직 우리 사전이 안고 있는 과제는 적지 않다.

각 어휘의 기본 형태소 분석,어원의 연구와 제시,올림말 전체에 대한 표준 발음 적용,비슷한 말끼리의 자세한 뜻 차이 밝히기,문법 형태에 따른 말의 정확한 쓰임새 등을 두루 보여주어야하는 여러 문제가 있다.오늘날 우리 언어는 세계 속의 큰 언어로 발돋움하고 있는 한편,민족 언어 문화의 분단 상황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지난 한 세기 동안 선배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많은 사전들로 우리의 말과 글은 이렇게라도 거두어지고 지켜지고 간직될 수 있었다.더욱 갈고 닦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이다.

이제 사전 편찬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졌다.편찬 자료로서 남북한 및 해외 동포들의 언어를 찾아 모을 수 있고,또한 토박이말 살려쓰기에 힘쓰는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들도 많이나오고 있다.더구나 컴퓨터의 위력으로 사전 편찬 의 구성은 사람이 하되 수많은 자료의 관리와 온갖 처리는 기계한테 시킬 수있게 됐으니 말이다.다만,사전 편찬에 종사할 야심찬 두뇌와 지속적인 경영의 확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머지않아 남북한 및 옌볜(延邊) 등지의 사전학자들이 한자 리에 모여 한민족 공동의 언어 사전을 편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 한글학회 사전 편찬위원〉 조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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