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정 국제 이슈로 확대-OECD내 입지 약화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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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의 노동법 개정 회오리가 국제적 이슈로까지 점차 확대 비화돼 정부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더불어 국제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정부는 각국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국제 노동단체들 의 시위사태등에 촉각을 세우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주노총등 노동단체들은 정부의 이같은 약점을 간파해 OECD와 국제노동기구(ILO),각국 노동단체등에 협조서한을 띄우는등국제여론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정부 입장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역시 OECD쪽의 움직임이다.
한국이 새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노동법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약속한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OECD는 오는 22일 한국의 새 노동법이 국제기준에 합당한지 여부를 공식 검토하게 된다.정부는 현행 OECD 규약에는 OECD 기준 에 위배되는제도를 만든 회원국에 대한 제재조치가 명시돼있지 않아 당장 무역보복등의 조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새 노동법이 국제기준에 미달하고 OECD의 기본 정신중 하나인 인권존중과 상충된다는 평가를 받을 경우 OECD 내 입지가 크게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 노동단체들의 항의시위도 여간 곤혹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노동단체들은 10일 워싱턴.뉴욕.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등 주요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 시위를 벌였다.최대 노동단체인 미 노동조합총연맹(AFL-CIO)은 워싱턴시내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서,의류노조와 서비스업노조는 뉴욕 맨해튼 총영사관 앞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하는 시위를 벌였다.
AFL-CIO의 린다 셰이브톰슨 부회장은“한국 정부는 노조결성.단체협약의 자유등에서 ILO 기준에 맞지 않는 새 노동법을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미국의 의류노조는“한국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전세계 노동계의 힘을 규합해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의 시위는 유럽에서도 전개돼 국제자유노조총연맹(ICFTU).유럽노조연맹(ETUC).기독교노조연맹(CSC)등의 대표단 1백여명이 10일 브뤼셀 주재 한국대사관 앞에 집결,한국 노동법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했다.이들은 또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상황에 우려를 표명했다.이밖에 호주.태국.필리핀등 동남아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다.
국제 노동단체들의 동조시위 강도가 이처럼 높은데는 국내 노동계의 국제연대 활동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국내 노동계는ILO 가입등으로 정부가 국제 노동계의 여론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보고 그동안 국제 연대활동을 꾸 준히 전개해 왔다.이번 사태에서도 민주노총등은 국제 노동단체들에 홍보성 서한을 계속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사태에 대해 정부는 일단 외무.노동부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 노동법 개정의 불가피성을 적극 홍보한다는 방침 외에는 뾰족한 대책을 찾지못하고 있다.
외무부 당국자는 각국의 시위 양상에 대해“ICFTU 본부 지시에 따라 조직적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까진 한국 노동자들에게 연대감을 표시하는.일과성'시위에 그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도“그러나 ICFTU 회원인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집행될 경우 파문이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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