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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성공 뒤엔 '바른생활 공주님' 이미지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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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세기 만에 등장한 '아메리칸 드림 패밀리'. 젊은 대통령, 멋쟁이 아내, 귀여운 아이들...존 F 케네디 대통령 가족이 보여줬던 이상적인 가족이 '블랙 케네디'로 불리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가족에게서 재현됐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젊고 잘생긴 대통령, 스타일리시한 영부인, 귀여운 아이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가족이 보여준 ‘아메리칸 드림 패밀리’가 반세기 만에 새롭게 등장했다. 44세에 대통령이 된 케네디 이후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 될 버락 오바마(47) 미 대통령 당선인 가족이다. 미국인들은 ‘젊고 연설 잘하는 흑인 후보’ 오바마에게서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케네디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이제 그들은 오바마 부부와 어린 두 딸을 보며 미국이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던 케네디 가족을 연상한다. ‘블랙 드림 패밀리’가 미국의 새로운 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존과 캐럴라인이 두 살, 다섯 살이 된다. 캐럴라인의 키는 45인치(약 1m14㎝), 몸무게는 27파운드(약 12㎏)다. 백악관 3층에 마련된 유치원에서 오전 9시부터 수업을 듣는다. 캐럴라인이 기르던 동물 중 카나리아 ‘로빈’과 고양이 ‘톰 키턴’은 죽었다’.

1962년 11월 25일자 뉴욕 타임스 기사 중 일부다. 주요 일간지가 대통령 자녀의 합동 생일파티 기사를 1면에 실을 정도로 케네디 가족은 톱스타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캐럴라인의 갈색 조랑말 ‘마카로니’에게도 팬레터가 쏟아질 정도였다. 케네디 전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아들은 ‘존-존’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86세의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가 존-존을 둥개둥개 해줬다’거나 ‘존-존이 대통령 집무실 책상 밑에서 숨바꼭질하다 끌려나왔다’는 유의 백악관 소식이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케네디가 61년 1월 백악관에 들어왔을 때 캐럴라인은 네 살, 존은 생후 2개월이었다. ‘재키 스타일’을 유행시킬 정도로 패션 감각이 뛰어난 아내와 금발에 푸른 눈동자의 인형 같은 아이들. ‘젊고 멋진 대통령 가족’은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바마는 젊고 진취적인 이미지의 ‘블랙 케네디’로 널리 알려졌다. 부인 미셸도 단발머리에 굵은 진주 목걸이, 심플한 원피스 차림으로 ‘블랙 재키’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두 딸 말리아(10)와 나타샤(‘사샤’·7)는 천진한 모습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빠, 어린이들한테는 악수하는 게 아니라 손을 흔들거나 ‘안녕’ 하는 거예요”라는 말리아의 깜찍한 조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젊은 아빠, 멋쟁이 엄마, 귀여운 아이들이라는 구성과 밝고 단란한 가족 이미지는 케네디 가족과 꼭 닮았지만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에도 시대의 변화가 엿보인다. 케네디 가족은 부부가 둘 다 미국에서 손꼽는 명문가 출신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만큼 아이들도 승마 등 귀족적인 취미를 즐겼다. 혈통이 좋은 강아지도 여럿 키웠다. 이들은 ‘풍요로운 미국’의 상징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오바마 부부는 두 사람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열심히 공부해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다. 알레르기가 심한 맏딸 때문에 지금껏 강아지를 못 길렀다. ‘아빠가 대통령이 되면’ 사주기로 한 강아지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올 예정이다. 오바마는 딸에게 조랑말을 사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바마 가족은 ‘진취적인 미국’의 상징이자 롤 모델이다.

케네디 이후 약 50년 동안 인기 있는 대통령 가족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아이들 효과’를 볼 만큼 젊은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77년 취임 때 막내딸 에이미(10)를 데리고 왔지만 마흔셋에 본 늦둥이 딸이라 케네디 가족과는 이미지가 달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외동딸 첼시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 제나·바버라는 ‘뭘 해도 사랑스러운 어린이’ 시기를 지난 청소년이었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도 대통령의 막내딸을 대학생 사고뭉치로 그렸듯이 케네디식 대통령 가족은 ‘좋았던 옛날’일 뿐이었다. ‘블랙 케네디’ 오바마가 등장하기 전엔.


 
한 주 용돈 1달러, 생일 선물은 없어

케네디 부부의 교육 방침은 ‘평범하게 기르는 것’이었다. 부모와 함께 헬리콥터와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일상이 평범할 순 없지만 “보통 아이들이 하는 경험을 다 하게 해주고 싶다”는 게 재클린의 입버릇이었다. 핼러윈 때는 다른 아이들처럼 분장하고 사탕을 얻으러 돌아다니게 했다. 케네디는 집무실에서 퇴근하면 손뼉을 짝짝 치며 “아빠 왔다~”고 했고 아이들은 아빠에게 달려갔다. 해마다 전국의 팬들이 아이들 생일선물을 부쳤지만 곧장 인근 보육시설에 기부했다. 주 중에는 TV 시청을 못하게 했다.

오바마 부부도 평범하게 기르는 데 주력하겠다고 한다. 아빠의 독립기념일 유세현장에서 생일을 맞은 말리아에게 청중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하지만 미셸은 “언제나 인생이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아이들이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오바마식 생일파티는 함께 수영을 하고, 영화를 보러 가며, 피자와 팝콘을 사주고, 딸의 친구들이 하룻밤 자고 가게 하는 것이다. 생일선물은 없다. 파티에 이미 충분히 많은 돈을 썼고 선물은 친구들에게 받는다는 게 이유다. 용돈은 일주일에 1달러, 그것도 설거지와 상 차리기 등 집안일을 했을 때만 준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은 아이들을 평범하게 키우기 위해 사립학교를 보낸다는 모순적인 방침을 택했다. 미디어 노출을 피하기 위해서다. 첼시는 한 해 학비가 2만7000달러(약 3800만원)인 사립학교를 다녔다. 오바마의 딸들도 현재 시카고에서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미셸은 최근 첼시가 다닌 학교 등 사립학교 세 곳을 둘러봤다. 하지만 공립인 라파예트 초등학교에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1600번지’(백악관 주소)에 사는 두 아이의 입학절차 문의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에이미를 공립학교에 보내 화제가 됐다.
 
소통령·쓰리홍에 얼룩진 한국 대통령 가족

케네디는 ‘완벽한 가족’ 이미지 덕을 많이 봤다. 아내와 자녀들의 인기는 대통령의 인기로 이어졌다. 연예인 같은 친근함은 그의 정치적 노선까지 정겹게 느끼게 했다. 아이들과 단란하게 찍은 사진을 언론에 정기적으로 배포한 까닭을 짐작하게 한다. 오바마도 ‘블랙 드림 패밀리’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후 첫 기자회견 때 유기견 입양 얘기를 부각시킨 것도 ‘가족 마케팅’ 효과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다. 10일 백악관 방문 때도 두 딸이 쓸 방에 큰 관심을 보이며 가족의 가치를 강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케네디와 동갑(1917년생)이었다. 케네디보다 2년 늦게 대통령이 됐다. 세계적 인기를 얻은 케네디식 가족 이미지 메이킹 효과를 충분히 숙지했을 터다. 여건도 좋았다. 아직도 정치인 아내들의 교본으로 꼽힐 만큼 당시 육영수 여사의 한복 자태는 우아했다. 11·9·5세의 어린 삼남매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케네디가 보여준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한국식의 ‘엄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예의 바른 아이들’로 바꿨다. 언론에는 ‘영애’와 ‘영식’의 반듯한 모습이 소개됐다. 지만군이 코미디언 곽규석을 ‘후라이보이씨’라고 부를 만큼 엄격한 예절교육을 부각시켰다. 아침마다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저녁엔 게임을 하는 단란한 모습도 보였다. 박근혜 의원이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데는 청와대 시절의 ‘바른생활 공주님’ 이미지 덕도 컸다는 게 중론이다.

박 전 대통령 이후로는 가족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장성한 아들들이 각종 정치적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대통령 가족=비리’ 이미지만 굳어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소통령’논란을 일으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이 ‘쓰리홍’으로 불린 게 대표적이다. 대통령 아버지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긴커녕 정치적 부담만 가중시켰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이미지 메이킹’은 엄두도 못 낸 채 자녀들의 언론 노출을 극도로 자제해야만 했다. ‘한국판 오바마 패밀리’가 등장하기엔 국내 정치 환경은 아직도 척박하기만 하다.

구희령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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