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바꿨을 뿐인데 … EPL 토트넘 최근 5승1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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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졸린 듯 눈꺼풀이 반쯤 처진 채 멍한 표정을 짓기로 유명한 해리 레드냅(61) 감독.

외모만 보면 좀처럼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 잉글랜드 출신의 노감독이 침몰해 가던 토트넘 홋스퍼를 살려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8경기째 승리하지 못하고(2무6패) 경질된 후안데 라모스 감독 대신 지난달 말 지휘봉을 잡았다. 쉽사리 포기해 버리던 오합지졸들은 그의 지도 아래 맹수로 돌변했고, 패배를 모르는 전사로 거듭났다. 토트넘은 13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화이트하트레인에서 열린 2008~2009 칼링컵 16강전에서 거함 리버풀을 4-2로 꺾고 8강에 올랐다. 레드냅 부임 후 6경기 연속 무패(5승1무)에다 UEFA컵을 포함해 최근 4연승이다. 아스널과의 북런던더비에서 후반 5분을 남기고 2골을 넣어 4-4 무승부 드라마를 연출한 데 이어 리버풀을 두 차례나 꺾는 파란을 일으키자 한 달 만에 토트넘에 기적을 일으킨 그의 리더십이 화제가 되고 있다.

레드냅 효과의 실체는 긍정의 리더십이다. 라모스 전 감독은 맨유와 리버풀에 빼앗긴 베르바토프와 로비 킨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불만을 늘어놓다 남아 있는 선수들의 신뢰마저 잃었다. 레드냅 감독은 우선 훈련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부담감을 덜어주는 푸근한 대화로 패배에 젖어 있던 선수들에게 믿음과 긍정의 힘을 불어넣었다. 스페인 출신으로 항상 통역을 달고 다니던 라모스 감독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달 2일 리버풀전에서 역전 결승골을 뽑아낸 로만 파블류첸코는 “레드냅 감독은 참 유쾌한 사람이고 여러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레드냅 부임 후 5골을 몰아친 대런 벤트는 “감독님은 나를 믿는다. 난 믿음에 보답하려 했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레드냅 감독은 “특별할 게 없다. 긍정적인 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면서도 “경기 후 우리 라커룸을 들어와 보라. 마치 우승한 팀 같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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