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중앙문예>시 가작-이성일씨 당선소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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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육체가 영혼의 집이듯 언어는 내가 나의모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집이고 육체다.부딪치면서 딱딱해지고거칠어지고 그래서 더욱 견고해지는,때론 감옥처럼 그 견고함에 갇히기도 하는.
그렇게 빌려 쓰던 말을 버리고 싶었다.그러자 바람에 자꾸 무슨 소리들이 섞여오기 시작했다.풀잎이,나뭇잎이,그리고 그 모든뿌리내리는 것들의 뿌리 끝에서 뿌리를 세차게 끌어당기는 소리들이 들렸다.그리고 소리를 소리로만 듣자 그 소리 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왜 서럽지 않았겠는가.천둥 번개라도 치는 날 밤,그 말의 목구멍 깊숙이 언뜻 보이던 말의 버팀목들이.
살던 바다 주문진을 떠나오면서부터 내내,내 삶을 따라다니던 수평선.어디서든 내가 사는 곳을 바다 근처이게 하던 그 수평선을 넘을 수가 없었다.사변때 아버지가 넘어 오셨다가 끝끝내 넘지 못하고 눈감은,꿈이라도 한번 넘겨보려고 배를 모았다가 태풍에 날리고 해일에 깨먹고는 어머니 등쌀에 두번 다시 꿈도 꿔보지 못하고 눈 감으신 그 경계가,살면서 바닥이 안보일 때마다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바다를 끼고 살면서도 언제나 바다 근처에만 머물렀다.
이제 한발 더 디딜 수 있게 됐다.내가 내 삶속에서 띄워 올린수평선 너머로,한발 더 디딜 수 있게 정신을 생으로 보여주신 신대철선생님과 소설가 최규익형,내색하지 않고 모 든 어려움을 잘 감당해준 우리 식구와 내가 무엇과,어떤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순간도 잊지 않게 하는 소중한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그리고 결함 많은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어머니,지금은 안계시는 아버지,시나 써 가지고 밥 빌어먹을 일있느냐고 구박만 하시던 아버지.부끄러움만 남는 이름을 당신께 바칩니다.
▶67년 강원주문진 ▶강릉대 국문과4년 재학중 ▶국민대 사회교육원 시창작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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