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만들어주는 ‘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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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강수산나 주임검사가 사기 도박용 카드와 화투를 만들어 유통한 일당을 구속 기소한 것과 관련해 증거물을 공개하고 있다. 사기용 카드와 화투는 뒷면에 특수 형광안료로 무늬와 숫자를 그려넣어 특수 렌즈를 착용하거나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박종근 기자]

지난해 12월 이모(49)씨는 동생(44)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시에 공장을 차렸다. 이들은 이 공장에서 특수 형광안료로 뒷면에 무늬와 숫자를 표시한 트럼프 카드를 생산했다. 서로 짜고 치는 패들만 알아볼 수 있는 이른바 ‘무늬목’을 만든 것이다. 특수한 적외선 카메라도 제작했다. 카메라엔 형광안료와 파장이 같은 필터를 장착해 카드의 표시를 식별할 수 있게 했다.

인쇄업을 했던 이씨가 형광안료의 배합을 맡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유모(40)씨는 수입한 광학용 렌즈를 정밀하게 깎아 특수 필터로 가공했다. 이씨와 유씨는 각자 10여 년간 속칭 ‘타짜’들이 전문적으로 이용하는 사기 도박용품을 만들어 왔다. 이쪽 업계에선 최고로 통한다고 한다. 이들이 만나 기존의 도박장에 보급됐던 카메라나 콘택트 렌즈로는 읽을 수 없는 신형 도박용품을 제조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임수빈)는 11일 이씨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판매책 유모(55)씨 등 2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또 달아난 오모(56)씨 등 2명을 기소중지(지명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불법 사기 도박용품인 ‘렌즈-카드’ 및 ‘카메라-카드’ 세트를 제조해 총 2000타(1타는 12목, 1목은 카드 한 세트)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가 4억원 상당이다.

콘택트 렌즈용 카드는 12세트에 20만원에 팔렸다. 렌즈는 개당 10만원이었다. 새로 개발한 카메라용 카드는 12세트에 100만원에 거래됐다. 카메라 장착용 소형 필터는 개당 500만~1000만원에 달했다.

검찰 수사 결과 구속된 이씨는 중국으로 진출해 매달 2500만원을 받고 염료 배합 기술 등을 전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 3~4곳에 기술을 전수, 1년여 동안 수억원을 벌었다. 미국 업자들로부터 주문을 받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타짜들은 대부분 사기 도박용품을 사용한다”며 “평범한 사람은 패를 펼쳐 놓고 치는 것과 마찬가지라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유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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