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한국체조 뜀틀황제 유옥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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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체조의 금자탑을 세운 왕년의.뜀틀황제'유옥렬(23.전연기군청).91,92년 세계선수권대회 뜀틀 금메달,92바르셀로나올림픽 뜀틀 동메달에다 각종 국내외 대회 우승등 화려한 명성을 날리던 그였으나 이제 체조팬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일어섰다..날자.날자.날자.한번만 더날자꾸나.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이상의.날개'에서)를 되뇌며. 그에게는 두차례의 위기가 있었다.93년4월 세계선수권대회(영국)에서 동메달(뜀틀)을 따낸 후 고질적인 허리병이 도졌다.
이때문에 태릉선수촌을 나와야했다.이것이 그의 첫번째 퇴촌.
그후 1년간 집에서 쉬어야했다.아프던 허리가 어느날 거짓말처럼 나았다.그러자 다시 욕망이 꿈틀거렸다.그래서 다시 뜀틀을 잡고 날아 올랐고 94년5월 KBS배가 첫번째 재기 무대가 됐다.“역시 옥렬이”라는 찬사와 함께 4관왕을 차지 ,다시 1년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갯짓도 잠시.94년10월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또다시 불운이 닥쳤다.허리(요추분리증) 때문.이듬해 2월 졸업(경희대)과 동시에 또다시 선수촌을 나와야했던 그에게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쉬는 짬짬이 평택중에 나가 후배들을 돌봤다.그러다가 2년간의 공백끝에 소속팀(연기군청)에 이끌려 95전국체전에 출전,4관왕을 차지했다.
“지난 8월이었어요.애틀랜타올림픽에 나간 형(여홍철)의 모습을 TV로 봤고,그때 다시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그러고 두달 후.지난 10월 전국체전 링에서 금메달로 보답했다.수원 세류초등학교 4학년때 봉을 잡은 체조.올해로 14년째.때로는 허리통증을 마취제로 견뎠고,때로는 눈물을 흘려가며 연기를 펼쳤다.155㎝.59㎏의 작은 체구에 예쁘장 한 외모.작은 키가 불만일 수 없다.
그는 요즘 신이 난다.새해부터 국제대회에서 뜀틀 비거리(착지거리)규정이 없어지기 때문.비거리가 짧아(2.5~3) 늘 고민해왔지만 이제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마음껏 자신만의 연기를 펼칠 유옥렬.그는 10점 만점짜리 최고난도(슈퍼E급)신기술 개발에 한창이다..손짚고 2회 앞공중돌아 1백80도 뒤틀어 내리기'.그가 부상과 재기의 악순환을 끝낼 마지막 수단이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반드시 형(여홍철.애틀랜타올림픽 뜀틀 은메달리스트)을 이겨야 세계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그는 파우더(탄산마그네슘)를 손에 듬뿍 묻힌 뒤 구름판을 딛고 다시 뜀틀 위로 날아올랐다.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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