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위기를 기회로 … 브라운 총리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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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가 이끄는 집권 노동당이 모처럼 웃었다.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참패가 예상됐던 스코틀랜드 글렌로즈 보궐선거에서 낙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노동당 후보는 스코틀랜드 국민당 후보에게 6% 이상 큰 차로 여유 있게 당선됐다. 비결은 ‘브라운 효과’였다.

최근 금융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인기가 급상승한 브라운이 지원 유세에 나서면서 판세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갔다. 그는 “이번 선거는 금융위기와 싸우는 정부를 국민이 도와주느냐 않느냐를 결정하는 시험대”라고 힘줘 말했다.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만 해도 노동당의 지지율 하락과 잇따른 선거 패배는 브라운의 탓으로 돌려지는 분위기였다.

5월 지방선거에서 아성인 런던시장 자리를 내준 것을 시작으로 6~7월 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은 연이어 쓴 잔을 마셨다.

특히 브라운의 텃밭이었던 글래스고에서 패배한 뒤부터는 당내에서 그를 몰아내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브라운이 총리를 하는 이상 노동당에서는 누구도 자기 자리를 안심할 수 없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던 브라운에게 금융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그는 영국의 10년 경제 부흥을 이끈 경제 각료답게 세계가 당황스러워할 때 전면에 나서 영국식 해법을 제시했다.

그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구제금융안과 은행 국유화안 등을 잇따라 내놓아 금융시장 불안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각료 회의장을 전쟁상황실(war room)로 옮겨 국민에게 비장한 각오를 보여주기도 했다.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그의 지도력에 국민의 믿음은 부쩍 커졌다. 그의 경쟁자인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에게 한때 20% 이상 처졌던 지지도는 최근 9% 이내로 좁혀졌다.

금융위기가 만든 또 다른 스타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도 역시 급상승하고 있다.

그는 금융위기 당시 유럽연합(EU) 의장답게 EU 국가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데 탁월한 리더십을 선보였다. 역사적인 유로존의 구제금융안이 발표되고 한 달 만에 그의 지지도는 7%포인트나 뛰었다. 지난해 말부터 개혁 정책에 대한 반발 등으로 추락하던 그의 인기는 이번 사태 이후 단숨에 만회된 분위기다. 두 사람을 보면서 국민의 눈은 역시 정확하고,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