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바람의 화원’의 숨은 주역 ‘핸드 싱크’ 이종목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섬세한 신윤복의 ‘미인도’부터 호방한 김홍도의 ‘군선도’까지, SBS TV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극본 이은영, 연출 장태유)을 보면 한국화의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 김홍도와 신윤복을 연기하는 박신양과 문근영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이들의 흔들림 없는 붓놀림이 “설마 진짜로 그리나?” 하는 호기심까지 자아낸다. 물론 일명 ‘핸드싱크’라는 손 대역이 따로 있다. 주인공은 이종목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교수를 비롯한 안국주, 백지혜, 구세진 동양화 작가 등 총 네 명이다.

● "어진 그릴 때 눈 튀어나올 뻔"

기본적으로 드라마 속 그림 감수 및 총괄은 이종목 교수가 맡고, 세명의 여성 작가가 손대역을 주로 한다. 간단한 필선은 배우들이 직접 그리지만, 그림 장면의 90% 이상은 이들의 손이다. 특히 정조의 ‘어진화사’나 8폭 짜리 초대형 ‘군선도’ 등을 그릴 때에는 네 작가의 손이 모두 투입됐다. 이 교수는 “작품 모사란, 터럭 하나라도 똑같이 그리는 기술적 작업을 뛰어넘어, 그린 작가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고도의 육체와 정신 노동”이라고 설명했다.

분야에 따라 손대역을 가르기도 한다. 이종목 교수가 총지휘를, 풍속 인물화는 안국주, 견화와 어진은 백지혜, 의궤와 산수화는 구세진 작가가 주로 담당한다.

이종목 교수가 처음 드라마 참여 제의를 받은 것은 지난 2월. 오원 장승업의 삶을 그린 영화 ‘취화선’에 참여했던 이종목 교수는 이번 드라마로 인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삼원삼재’(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의 그림을 모두 직접 재현해내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종목 교수는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신분 때문에 신윤복을 여자로 그리는 드라마에 참여한다는 게 욕먹을 일이 될까봐 고민했다. 원작 소설을 읽고 일주일 만에 결심을 했다. 이왕 누군가가 할 일이라면 내가 맡아 한국화의 의미를 알려보는 데 더 힘써보자는 생각에서다”고 말했다.

● "돈보다는 사명감으로"

이후 이 교수는 배우들에게 3개월간 동양화 이론과 실기를 가르쳤다. 그는 “워낙 명연기자들이라 금세 실력이 늘었다. 표정과 붓놀림만 보면 박신양, 문근영 모두 진짜 화원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네명의 작가는 300여장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일주일 내내 촬영장 옆에서 살 정도다. 이들이 받는 보수는 네 명이 합쳐 1억원 가량. 정상급 작가들의 1년치 보수로는 적은 돈이지만 “사명감으로 일한다”고 밝혔다.

이종목 교수는 “정조의 어진화사 같은 경우, 실제 남아 있는 작품이 없어서 우리가 직접 그려야 했다. 연기자 배수빈의 얼굴을 모델로 조선시대 재료와 그림 양식을 재현하려 했지만, 어려웠다. 석달을 네 명이 매달려서, 나중에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군선도’도 50번 이상 그렸다.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다. 방송 후 한국화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어서다. 이 교수는 “동양화야 말로 현대 사회에 부각되고 있는 문화키워드”라며 “화선지에 붓을 가져다 대는 순간, 그림이 완성되는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화법은 정신수양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한국화에 대한 교육이 전무한 현실 속에서, 화선지에 먹물 퍼져나가듯 동양화에 관심이 뜨거워져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JES 이인경 기자 [best@joongang.co.kr]
사진= 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

[J-HOT]

▶ 서울대생 "25번 원서 써 서류전형 두 번 통과"

▶ 오바마, 대선 만찬장서 "죽어" 외쳤던 그를 오른팔로

▶ 한국인이 중국가서 먹고 싶어하는 2000만원짜리 요리

▶ 김혜수 뺨치는 2008 '미스 지구' 건강미+섹시미

▶ "故 최진실 묘소 초라하다" 항의에 새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