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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올가을 단풍놀이는 천문대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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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한번 쯤은 들었을 것이다.

'별자리나 별자리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아이에게 들려주면 좋은데….'
'우주나 행성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주지?'

필자는 기상병으로 군에 다녀왔기 때문에 밤낮으로 하는 일이 하늘과 별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천문대 기상학과를 나온 선임은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와 별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해주곤 했는데 그 때만큼은 정말 행복했고 평소에 싫기만 하던 고참이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훗날 내가 아버지가 되면 내 아이에게 별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교사들은 천문대 연수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비용이 조금 들긴 하지만 1박2일 동안 천문대에 머물면서 별자리를 직접 관측하고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 과정은 소수인원만 뽑기에 일찍 마감이 된다. 게다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천문대에 간다고 해도 연수 첫날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기라도 하면 말짱 꽝이다. 가장 보기 쉽다는 태양조차 보지 못하고 돈만 날리고 돌아와야 한다. 그 때마다 관계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가을에 오세요. 가을은 구름도 거의 없으니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하늘에 구름이 보이지 않는다면 점심때를 지나 아이 손을 잡고 천문대에 들리세요. 구름이 없는 가을 날 만큼 별보기 성공 확률이 높은 날이 없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해 가을 퇴근 후 천문대를 다시 찾았고 많은 별자리와 아름다운 밤하늘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님들로 인해 디딜 틈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매우 한가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평일에는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체험학습을 올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제대로 별자리 관측도 하고 마음껏 밤하늘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천문대에서의 알찬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나들이 온 가족들과 체험학습 그룹들의 단체 견학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주말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평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주말에는 망원경 한 대 당 3-40명씩 줄을 서서 기다리기 때문에 무엇이 보이는지 확인도 못하고 잠깐 눈 한번 깜박거리고 자리를 비켜 줘야하지만 평일에는 주관측실의 600m급 리치 크레디앙 방식의 반사망원경을 내 것처럼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다.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꼭 한번 천문대에 가봐야 한다.

1. 우주에 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처음 태양을 관측했을 때도 그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워 가슴이 벅차올랐다. 쉰 살이 넘으신 부장교사 선배님들도 책을 통해서만 보고 교과서에 나오는 사진을 통해 가르치기만 했던 우주의 신비로운 모습을 직접 보신 것은 처음이셨는지 관측에 적극적이셨고 망원경으로 보이는 천체의 모습에 매우 놀라워하셨다.
관측을 마치고 내려오실 때 쯤
'앞으로 과학교과에서 우주관련 단원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졌는걸. 아이들과 함께 이런 걸 직접 보면 정말 좋을 텐데…….'
하고 말씀하셨다. 학창시절 주구장창 외우며 지겹게 공부했던 어른들이 봐도 즐겁고 신기한 행성들의 모습을 지금 막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본다면 얼마나 더 신비롭겠는가?

2. 교과 공부에 매우 도움이 되며 과학교과에 대한 흥미를 얻게 된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발달단계 상 직관적인 이해와 직접 경험을 통한 학습이 가장 효과적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다. 어떠한 지식을 교과서 지면으로 처음 접하는 것보다 그 이전에 직접 경험해보거나 관련된 다른 지식들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 과학 과에서 요구하는 선행학습이고 예습이다. 3학년 2학기 3.지구와 달, 5학년 2학기 7.태양의 가족, 6학년 2학기 4.계절의 변화에 나오는 내용들이 모두 태양계와 행성과 관련 있는 단원들이다. 우주에 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는 암기해야할 내용만 많은 따분한 단원이다. 평소에 경험하거나 들어봤던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해도 못하고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점의 천체관련 서적 한 권 사주는 것 보다 실제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이의 흥미 유발과 학습 동기 부여에 더욱 필요하다. 사실상 천문대에 가서 직접 관측을 하고 별자리도 공부했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우주와 천체에 관한 열정이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교과 내용에 관한 이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빨랐기 때문이다.

3. 천문대에서는 천문 관측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적인 관측 보조 장비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천문대에서는 보조관측 장비인 천체 관측용 CCD 카메라 및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여 자신이 관찰한 별자리를 직접 촬영해 간직할 수 있게 해주고 계절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편안히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디지털 플라네타리움, 우주 공간을 비행하며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관찰하고 공부하는 우주 학습 공간 챌린저센터 등이 준비되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러한 천문대에서 준비한 ‘1박 2일 가족 캠프’나 ‘어린이 천문 캠프’ 등에 참가하며 전문가들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또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천문대마다 입장시간을 연장하거나 각종 이벤트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이왕 방문할 거라면 테마 축제 및 이벤트가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것도 좋다. 개기월식 이벤트, 토성 관측 프로그램, 가을맞이 꽃바람·별바람 축제, 가족음악회 등 매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4. 천문대 주변은 멋진 가을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천문대는 별을 보는 곳이다. 주변이 어둡고 장애가 되는 높은 건물들이 없는 곳일수록 별이 더 잘 보인다. 때문에 천문대는 왕래가 드문 한적한 지역의 높은 곳이나 유흥가나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주변은 가을을 뽐내는 단풍잎 가득한 나무들로 뒤덮여 있다. 천문대 주변은 휴식을 즐기고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산림욕장이 형성되어 있다. 덕분에 일부 천문대는 숲 체험 해설가와 동행하며 숲의 나무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천체 관측만 하러 들렸다가 덤으로 얻어가는 것이 더 많은 곳이 천문대이다.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과학과 교육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멀티문화공간인 것이다.

천문대에 가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제일 먼저 날씨부터 챙겨보자. 천문 관측의 성공도는 그 날 날씨에 달려있다. 앞서 말했듯이 가을철이 관측하기 가장 적합한 계절이며 11월 1일-10일 사이에는 금성, 직녀별, 태양의 흑점, 홍염, 태양계 중에 가장 큰 행성과 4대 위성, 백조자리 베타 별, 페르세우스 이중성단, 안드로메다은하 (M31) : 우리가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 달의 다양한 지형 (크레이터, 바다, 산맥 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조금 서둘러 보자.

우주와 별에 관한 체험을 통해 아이에게 과학적 상상력과 흥미로운 활동들을 통해 과학과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곳은 천문대이다. 이번 가을 단풍놀이는 내 아이를 위해 천문대가 있는 산으로 정하자. 오전에는 산행을 하고 오후에는 미리 인터넷을 통해 예약해둔 천문대에 가서 밤하늘의 별과 별자리와 우주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보자. 아이의 과학 교과서와 실험관찰 책까지 챙겨가는 센스를 발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참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다.

김범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