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오바마 시대 ② “규제 완화, 세금 인하 표방한 레이건주의는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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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주의는 끝났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5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차기 정부에 정권 인도 계획을 밝힌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제프리 삭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특보)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는 최근 CNN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규제 완화와 세금 인하를 표방하는 레이건주의(영국은 대처주의)가 미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렸다”며 “미국은 자기 몫을 하는 정상적인 정부와 적절히 규제되는 정상적인 금융시장을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의 황제’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도 맞장구쳤다. 그는 “금융위기는 1980년대 이래 빚과 규제 완화를 내세워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미국 주도 시장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레이건주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81년 취임한 이후 추진한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를 뜻한다. 레이건은 규제 완화와 자유무역을 통해 미국과 세계 경제의 성장에 기여했다. 또 공산국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며 체제 경쟁을 벌였다. 소련은 엄청난 군사비가 들어가는 체제 경쟁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레이건주의는 그후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정권에서도 정치·경제 철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역사의 종언』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레이건주의는 과거에나 유효했다”고 단언했다. 지금은 레이건이 통치하던 때와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규제 완화와 감세를 무리하게 추진해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를 맞았으며, 한 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재정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시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25%에 그친다. 대선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다 패배한 것도 공화당 정권인 부시의 부정적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부시의 감세 정책으로 미국의 부익부 빈익빈은 더 심해졌다고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비판했다. 경영자들이 기업 실적에 관계 없이 수백만 달러를 연봉으로 챙기는 사이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임금)은 하락했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 규제 완화로 고삐 풀린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금융시장을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판으로 만들었다”며 “돈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대출해 줘 집을 사게 했다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줄줄이 파산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는 올 8월 28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부시 정권) 8년이면 충분하다”며 부시와는 다른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화하고, 부자에 대한 세금을 올릴 방침이다. 신자유주의에 밀려 힘을 잃은 영국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의 정책을 채용한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직면한 도전은 엄청나다. 미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오바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각각 취임 때 직면한 대공황과 베트남 전쟁과 같은 과제를 동시에 맞닥뜨렸다”고 보도했다. 오바마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와 함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직면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NYT)도 6일 오바마가 맞닥뜨리게 될 난제가 산적해 있다며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차기 정권의 시급한 경제 과제 8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취임 후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차압 위기에 놓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파산법을 제정하라고 주문했다. 또 금융위기를 몰고 온 월가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강도를 높이고,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 구제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국민 의료보장제 도입 초석을 세우고 ▶해외 고급 기술인력의 미국 이민을 쉽게 하고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고 ▶자유무역 기조를 이어 가는 것도 그의 과제로 지적됐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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