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길용수필 "외국어학습과 사전" 내용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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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친척분으로부터 맨처음 선물받은 것이 포켓판 일본어 사전이었다.열심히 공부해 단 1년만에 그 사전은 너덜너덜해졌다.당시 나는 대학 일본어 코스에 들어갈 때까지 TV화면을 보면서 귀에 들리는 일본어를 사전 에서 찾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홈드라마의 대사중에 몇차례 나오는.쓰마라나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갖게 됐다.그 단어는 장면 장면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는 듯해 얼른 사전을 찾아보니 ①재미없다(오모시로쿠나이)②가치가 없다,별것 아니다는 두가지 의미로 명확히 설명돼 있었다.
그러나 일본어 실력이 늘면서 사전에 씌어 있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큰일이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예를 들어사전의 설명을 그대로 믿어버린다면 다음의 문장은 똑같은 의미가돼버린다.⑴미치코씨는 그 사람과.재미 없는'( 오모시로쿠나이)일이 있었습니다.⑵미치코씨는 그 사람과.재미 없는'(쓰마라나이)일이 있었습니다.
네이티브 스피커라면 당장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문장⑴의.오모시로쿠나이'는.쓰마라나이'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일본어의.오모시로이'라는 단어는 부정형의 .오모시로쿠나이'라는 형태를 취하면 본래의.흥미진진하지 않다'는 의미외에 또 하나 심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게 된다.
그런데 사전에는 확실하게.쓰마라나이=오모시로쿠나이'로 돼있어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사전만 순진하게 믿어 ⑴과 ⑵가똑같은 의미라고 확신해버린다.
이런 의미 차이들까지 사전에 설명돼 있다면 외국인이라도 다소나마 미묘한 일본 글의 뉘앙스를 간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사전에서 그런 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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