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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을찾아서>13.풍혈산 白雲禪寺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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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종필(金鍾泌) 자민련총재가 쓴 신년 휘호가 ‘줄탁동기( 啄同機)’라고 한다.

‘줄탁동기’는 원래 선문의 화두다. 스승과 제자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맞아떨어져야 깨칠 수 있다는 뜻이다. ‘줄탁’이란 병아리가 부화 시기가 돼 밖으로 나오려 할때 알 속에서 쭉쭉 빠는 소리( )를 내면 어미닭이 이를 감지하고 병아리가 나올 수 있도록 밖의 껍질을 쪼아주는 것(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시운이 맞아떨어지는 천시(天時)를 뜻한다.

내년은 대통령선거의 해다. 지금 대통령이 돼보겠다고 알 속에서 부화 시기를 기다리는 예비 후보군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러나 어미닭이 껍질을 쪼아주듯 유권자들이 표를 던져 부화시켜주지 않으면 알 안의 병아리(대통령)는 못나온다. 어미닭이 천시를 놓치기라도 하면 병아리는 죽어버릴 수도 있다.

어미닭(유권자)이 JP를, 부화시킬 닭알 속의 병아리(대통령후보)로 품게될지 어쩔지도 아직은 전혀 미지수다. 그러나 그는 벌써부터 천시론(天時論)을 휘호로 써서 들고 나왔다. 대통령선거 바람이 점점 거세질 것 같은 연말 기분이다. 객담은 이만 줄이고 본론인 화두로 들어가 보자.

모든 선방들이 안에서 쪼기( )와 겉에서 쪼기(啄)의 안목만을 갖추었을뿐 그 작용은 갖추지 못했느니라.

임제종 3세인 남원혜옹선사(860~930)의 상당

법어다. 설법이 끝나고 한 중과의 문답이 이어졌다.

묻는다:어떤 것이 안에서 쪼기와 겉에서 쪼기의

작용입니까.

답한다:선장(禪匠)은 안에서 쪼기와 겉에서 쪼기를

하지 않는다. 쪼고 쪼면

동시에 잃느니라.

남원혜옹(南院慧 )선사의 이같은 상당 설법은 ‘남원줄탁(南院 啄)’이라는 화두가 돼 선림에 널리 회자돼왔다. 노장적 천명관(天命觀)을 물씬 풍기는 화두다.

줄탁지기·줄탁동시( 啄同時)·줄탁기( 啄機)라는 말은 ‘시절인연’과 함께 선가의 전용어다. 그래서 일반 사전에는 잘 나오지도 않는다.

줄탁은 선림(禪林)이 즐겨 쓰는 시절인연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선사들의 개오(開悟)는 시절인연이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하다는게 선가의 불문율이다.

참선 수좌들의 견성도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아 깨주어야 부화가 되듯 스승과 제자의 ‘줄탁’이 맞아야 된다. 학인이 무르익어 깨침의 외마디 소리를 터뜨리고자 할때 스승이 한마디를 던져 견성의 문을 열어준다. 선학적으로는 이를 참선 학인의 기(機)와 봉(鋒)이 계합했다고 한다. 즉 인연을 만나 발동할만한 가능성(機)이 날카로운 칼끝(鋒)에 의해 터져 깨침을 이루는 것이다.

시절인연이 무르익었을때 스승이 빈틈을 주지 않고 법어·문답·화두등을 던져 제자를 깨달음의 경지로 이끄는게 선림의 전통적인 교육방법이다. 이를 병아리의 부화에 비유한게 ‘줄탁지기’다.

선가의 이러한 학인 지도법을 ‘양의공수(良醫拱手)’에 비유하기도 한다. 명의(名醫)는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할뿐 과잉 치료를 하지 않는다. 선사들의 제자 지도방법도 마치 훌륭한 의사는 팔짱만 끼고 있을 뿐인‘양의공수’와 같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치도록 주체적 자각만을 일깨울 뿐이다.

선문청규(禪門淸規)를 최초로 만든 백장회해선사(749~814)는 재만 있는 화로 속에서 불씨를 찾아내 보임으로써 위산영우를 대오(大悟)케 했다. 이때 위산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자 백장(百丈)은 이렇게 가르쳤다.

“불성을 보고자 하거든 시절인연을 잘 관찰하라. 시절이 도래하면 미혹함이 곧 깨달음으로 바뀌고, 잊었던 것이 문득 기억나느니라. 깨침도 이런 것이다. 오직 범(凡)과 성(聖)을 나누는 분별심만 없으면 심법(心法)은 본래부터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져 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열반경’에 나온다. 경(經)에서는 사람이 자성(불성)을 깨닫는 것은 시간의 비밀을 마음으로 알아낼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조동종 개창자인 동산양개선사(807~869)는 학인 지도법으로 조도(鳥道)·현로(玄路)·전수(展手)라는 세가지 길을 제시했다. 이른바 ‘동산삼로(洞山三路)’라는 것이다.

조도는 새가 공중을 날때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수행자는 몰종적(沒 跡), 즉 공명심이나 공리심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현로는 유무·미오(迷悟)등과 같은 일체의 분별적·차별적 견해를 초월해 오직 공(空)의 세계만을 왕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수란 깨침에 머물지 않고 다시 한발 더 나아가 중생교화에 몸바치는 ‘세속회향’을 할때 대중설법을 할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대권(大權) 얘기를 더 해보자. ‘줄탁동기’를 기다리는 예비후보들중 과연 ‘동산3로’를 지나온 사람이 있는가. 이 길을 통과하지 않고는 ‘시절인연’도 만날 수 없고 ‘양의공수’도 될 수 없다. 공연히 양의공수 폼만 잡았다가는 계란 속을 나오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병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신문에 ‘줄탁동기’휘호가 아무리 크게 보도돼도 소용없다. 국민을 선장들처럼, 양의(良醫)들처럼 이끌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남원선사는 하남성 여주 보응원(寶應院)에 주석하면서 임제종풍을 크게 선양한 당말 5대 선장이다. 특히 그는 풍혈연소(風穴延沼)라는 걸출한 제자를 배출, 선종을 임제종 천하로 통일하는 주춧돌을 놓았다. 임제종은 임제하 4세인 풍혈선사에 이르러서야 전통적인 종파 성립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남원-풍혈 사제는 동아시아 선종을 ‘임제종천하’로 만든 업적을 남긴 선종사의 거목이다.

흔히 뿌리가 깊고 흐름이 긴 원심유장(源深流長)을 임제선의 특징으로 꼽는다. 당나라말 이후 ‘임제종 천하 조동종 한구석(臨天下 洞一隅)’이라는 선종 판도를 이끈 남원-풍혈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는 화두의 하나가 ‘줄탁지기’다. 날카로운 대기대용(大機大用)으로 후진을 양성한 ‘줄탁지기’의 지도방법은 바로 임제선의 저력이 됐다.

남원의 행화 도량인 보응원은 훼멸됐고 풍혈의 주석 도량인 하남성 풍혈산 백운선사(일명 풍혈사)는 숭산 소림사에 버금하는 고찰로 잘 보존돼 있다. 현재는 조동종 사찰이고 20여명의 승려가 상주하고 있다.

우선 절의 풍모가 대단하다. 절에 도착하니 방장과 하남성 불교협회 간부들이 산문 앞에까지 나와 따뜻이 맞아주었다. 방장은 금란가사까지 입었다.

원래 금란가사는 황실 출입때나 전국적인 규모의 큰 불교행사때만 입는게 법도인데 너무 과분한 접대가 아닌가 싶었다. 절 경내로 들어서는 조그만 문 위에는 ‘석두활로(石頭滑路)’라는 편액이 붙어 있어 조동종 사찰임을 직감케 했다.

‘석두의 길은 미끄럽다’는 이 화두는 마조와 쌍벽을 이루면서 학인 제접(諸接)방법이 아주 능란했던 석두희천선사(700~791)를 상징한다. 조동·운문·법안종은 그 법맥이 모두 석두 법계(法系)를 연원으로 한다.

자세한 풍혈사 답사기는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증명:月下 조계종종정 ·圓潭 수덕사방장

글:이은윤 종교전문기자 사진:장충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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