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나다>초경량비행기 여성교관 강은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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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누구나 한번쯤은 도박을 꿈꾼다.인생 전부를 판돈으로 걸고 주사위를 던져 승부짓는 짜릿함.하지만 도박을 감행하는 용기도,그 도박에서 횡재를 하는 행운도 대개 보통사람들과는 인연이 없게 마련이다.1년전 여대생 강은주(姜銀周.22)양은.하 늘'과.땅'을 놓고 고민하다.하늘'에 모든 것을 걸고 주사위를 던졌다.
도박은 성공이었다.그러니 초경량비행기 여류교관이 된 그녀가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게다.
지리산에 흰눈이 덮인 어느 한낮 전북남원의 창공엔 姜양의.하늘 산책'이 한창이다.그녀를 실은 애기(愛機) 퀵실버호(號)가창공으로 치솟는다.멀리 88고속도로에 차들이 엉거주춤 멈춰 서있다..쌩'하고 단숨에 날아가보니 접촉사고다.서 로 삿대질을 해대는 아저씨들의 몸짓이 우스꽝스럽다.다시 조종간을 당겨 하늘로 올라간다.하늘에서 본 광한루는 사시사철 고즈넉하다.사람들이손을 흔든다.답례의 뜻으로 원을 세번 그리고는 섬진강을 따라 날아간다.자유,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이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새와 나란히 날아다니는 걸 상상해 보세요.손을 뻗으면 잡힐듯한 거리에서.세상의 모든 굴레를 날갯짓 한번으로 벗어던질 수있는 자유로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촉촉한 구름의 감촉은 또어떻구요.” 남다른 기쁨을 만끽하며 사는 姜양이지만 1년전만 해도 다같은 그 또래의 여대생이었다.충남서산에서 태어난 그녀는고교를 마치고 상경,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1년이나 다녔을까.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싫었다.은행을 그만두고는 땅에서 인생을 찾기로 작정하고 94년 서일전문대 부동산학과를 들어갔다.하지만 졸업을 앞둔 95년11월.제주도 졸업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그녀는 궤도를 수정하게 된다.초경량비행기 교관에 대한신문기사를 읽었던 것이다.
“.그래,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죠.그 다음부터는 그냥 돌진했어요.” 우선 가진 돈을 추렸다.아르바이트등을 통해 모은 돈이 2백50여만원.초경량비행기학교인 남원스카이파크에 전화를 했다.예상대로 답은 시원치 않았다.“젊은 여자가 집을 떠나 있는것도 문제거니와 분명히 도중에 포기할 것”이라는 학교측의 염려였다.부모님 역시 펄펄 뛰었지만 그녀는 12월초 기어코 짐을 꾸려 남원행 열차표를 끊었다.
1백50만원으로 허름한 방을 잡고 나머지 1백만원을 들고 남원스카이파크 이형준(李亨濬.45)사장을 찾아갔다.교관이 아니라학생으로서 비행을 배우는 대신 서류정리등 서무일을 하며 약간의월급을 받기로 타협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그녀는 6개월만인 지난 5월 국제교관면허를 땄다.물론 고비는 있었다.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3월 어느날 지리산 기슭을 따라 비행하던중 난기류를 만났고 갑자기 비행기가 2가량 밑으로 뚝 떨어졌다.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
가까스로 착륙시키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숙소로 갔다.
이후 그녀는 한달여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하지만.포기할 순 없다'는 오기로 다시 하늘에 올랐을 땐 그동안의 방황이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이제 그녀는 학교에서 제일 인기있는 교관이 됐다..날고 싶다'는 평생소원을 이루기 위해.소판 돈'을 들고 온 50대 농부로부터 짓궂은 농담을 계속 던지던 고등학생까지 30여명이 그녀에게 하늘을 배웠다.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앞날을 위해 차곡차곡쌓은 저금도 만만치 않다.직업 때문인지 그녀의 꿈도 하늘만큼 넓다. 에어쇼 참가에서부터 경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를 누비겠다는 소망까지 수십가지 희망이 그녀의 가슴속에 담겨 있다.그 중어느쪽에 판돈을 걸고 다음 도박을 준비하는지는 그녀만의 비밀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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