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김정일 다루듯 크게 써-脫北 김경호씨 서울이틀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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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경호(金慶鎬)씨 일가족은 안기부.군정보사.검경 합동신문조가운영하는 안가(安家)의 가족용 숙소에 묵는 첫번째 손님이 됐다. 정부는 그동안 한두 명의 귀순자를 대상으로 한 신문 대기 및 적응교육 장소로 운영되던 서울대방동 소재의 이 가옥을 최근개조해 가족용 건물을 늘려 지었다.탈북사태가 본격화하면 가족단위의 집단탈출이 상당수 이뤄질 것에 대한 임시대비 책이다.
서울에서 첫 아침을 맞은 10일 金씨 가족들은 조간신문에 자신들의 서울도착 소식이 크게 보도된 것을 보고“노동신문이 김정일을 다루듯 크게 썼다”며 탈북망명을 실감하는 표정이었다고 한관계자는 전했다.
손녀 충심(3)양이 설사로 탈수증세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수면과 식사는 대체로 원만한 편이다.그러나 일부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이들에게 아직 산책등의 외부 개별행동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가족중 중풍을 앓고 있는 가장 金씨와 임신 7개월인 막내딸 명순씨의 경우 도착 직후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았으며 곧 경찰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9일밤 공항에서 곧바로 이곳에 온 金씨 일가는 시설 이용방법등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모두 6개의 방을 배정받아 서울생활에 들어갔다.숙소는 최신시설을 갖춰 전혀 불편이 없으며 의료진과 보조요원등이 편의에 각별히 신경 쓰 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김경호.최현실씨 부부를 비롯해 장남 금철씨등 결혼한 4자녀의 가족이 방을 1개씩 사용하고 미혼인 차남성철씨와 동행한 사회안전원 최영호씨는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특히 안전원 崔씨의 경우는 金씨 일가와의 관계나 신원 및 귀순동기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위해 10일 오전 가장 먼저 신문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가족들도 차례로 신문을 받고 있다.수세식화장실 이용법은 물론 샤워실의 냉.온수 사용법과 TV.냉장고를비롯한 가전제품 다루는 법도 일일이 설명들었다.
부인 최현실씨는 이날밤 늦게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남동생 철호씨와의 국제통화에서“다들 온전히 서울에 왔다.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관계기관은 단일규모로는 최다인 金씨 일가의 조사를 위해 신문요원을 보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이들이 일가족인 데다 이미 귀순동기등에 대한 확인절차가 사실상 끝나 비교적 빠른 시일내 신문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일가족 5명과 탈북해 이곳에서 한 달 가까이 생활했던 오수룡(吳壽龍.63)씨는“가족단위의 경우 훨씬 적응이 빠르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그는“일반인들과의 접촉 이 단절된 상태에서 요원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나 남한의 실상을 알 수 있는 TV시청등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관계기관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합동신문소를 경비하는 군병력의 근무를 강화하고 주변 도로와 골목에 대해 경찰의 경비를 요청하는 등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으며 취재진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또 신문내용이 사전에 흘러나가 혼선을 빚거나 잘못 알려지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이번에는 신문에가담하는 관계요원들에게 20일 전후로 예상되는 공식기자회견때까지 귀가하지 말고 영내대기토록 지시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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