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정부의主役들>2.코언 國防지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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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사중인 미국 하원 법사위에서는 돌출사건이 발생한다.공화당 초선의원 한명이 문제가 된 백악관 녹음테이프의 의회제출 방식에 대해.녹음된 상태 그대로'를 요구한 것이다.
같은당 소속인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당황했음은 당연했다.그 초선의원은 얼마후 의회표결에서 또한번 백악관을 경악시켰다.민주당이 발의한 닉슨대통령 탄핵안에 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32세의 약관이었다.이름은 이번에 국방장관에 지명된 윌리엄 코언.
그의 국방장관 지명으로 미 정치사에는 새로운 기록이 추가됐다.그가 민주당 정부에 의해 최초로 국방장관에 지명된 공화당 인사이자,상원의원 출신 첫 국방장관 지명자라는 점이다.
물론 이같은 기록이 우연히 작성된 것은 아니다.코언의 국방장관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에는 많은 미 국민들이 공감한다.
코언은 의정생활 24년동안 상원 군사위등 18년을 국가안보 분야에서 활동했다.게다가 그는 당파적인 인상을 풍기지 않았다.
그는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군사력 증강계획을 반대했고,이란 콘트라사건 때도 상원 합동조사위원장으로서 중립적입장을 견지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된 직후 공화당 인사 영입의사를 밝혔을때 코언의 발탁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예측이 나온 것도 이런행적 때문이었다.상원 군사위원이던 코언에게 적잖이 시달린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마저 후임자로 코언을 추천했다고 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코언을 국방장관으로 공개지명하는 자리에서“당파를 초월해 미국의 국방을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라고 한 것은 단순한 수사나 치사가 아닐 것이다.
코언은 의회에서 자타가 공인하는.안보통'이다.특히 군축문제에관한한 그를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레이건 대통령 시절 군비증강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이에따라 폭격기 B-2기 생산계획이 추진되자 그는.반대투쟁'을 주도했다.여당 아닌 야당 의원 면모를 또한번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현실감각 또한 뛰어나다는 평가다.91년 의회에서미군의 걸프전 참전 논란이 일자 그는“후세인을 지금 제압하는 것이 앞으로 더 큰 재앙을 막는 길”이라며 참전을 강력히 주장했다. 94년 중국 인권문제로 미.중 관계가 악화됐을때 그는“양국의 군사.교역문제도 중요하다”며“대외정책이 인권문제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군축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만큼미국이 앞으로 국제문제에 군사 개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선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가지배적이다.
그는 40년 빵집을 운영하는 유대인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청교도식 가정교육을 받았다.그가 의원시절윤리문제에 많은 신경을 쓴 것도 이런 교육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문필가이기도 하다.이미 2권의 시집을 냈고 추리.스파이소설(논픽션 포함)도 6편이나 썼다.
그가 군을 통솔하는 총책임자로 지명된 것을 가장 반기는 쪽은의회다.특히 상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중인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과 존 워너(공화.버지니아)의원등 공화당 중진들이 그에게 큰 기대를 나타냈다.하지만 우려의 시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그의 의회경험등은 높이 살만하지만 그가 펜타곤에서직접 맞닥뜨릴 두터운 관료조직의 벽을 어떻게 극복할지 아직은 미지수”라며 성급한 평가를 유보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워싱턴=김용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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