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그들>화교 신세대들의 당찬 한국속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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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땐 한국이 원망스러워 서럽게도 울었다.그러나 지금 남아있는 상처는 없다.”.신세대 화교(華僑)'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한다.다소 의외일 게다.실제로 그들은 TV 연속극에 살짝 비치는과거 모습에도 금방 훌쩍이는 부모세대들과는 완전 딴판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세대 화교들은 현재.한국속 행진'이란 구호를 되새기고 있는 중.
이를.낙관적이고 튀는 걸 즐기는'소위 X세대의 기본 성향으로연결지어도 좋을까.이들 신세대 화교는 차별대우가 싫어 화교라는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했던 부모세대와는 달리.남과 다른 나'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즉 자신이 화교라는 걸 어디서건 당당히 표현한다.기실 중국어와 한국어.영어까지 대개 유창히 하는 이들에게 중국의 개방으로 활짝 다가온 세계는 새로운.기회'에 다름아니다.
잠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자.92년 8월24일 오후4시 서울시중구명동 대만대사관(현 중국대사관)앞.운집한 2천여 화교들의오열 속에 한.대만 단교(斷交)에 따른.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하강식이 시작됐다.이미 반쯤 내려진 깃발.흐느 낌소리는 더욱애절해졌다.입술을 바짝 깨물며 한편으론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에여념이 없는 화교들 중엔 어린학생들이 유난히 많았다.수업을 마다하고 스스로 모여들었던 그들.
이날 어른들은 수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는데….“너희들은 이 치욕과 아픔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우린 완전한 이방인이다.
한국사람들을 쉽게 믿지도,배우지도 말라.”그후 4년이 흘렀고 이젠 또다른 새해를 준비할 시간.그 사이.친구집이 싫거든 불평하지 말고 떠나라'는 중국 산둥(山東)지방의 속담처럼 상처만 안고 이 땅을 훌쩍 떠버린 화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이중 4년전 음지로 퇴장해가는 자신들의국기를 향해 하염없는 눈물을 쏟던 소년.소녀들.그들은 지금 딴모습을 하고 있다.
화교 신세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는.영턱스 클럽'.클론'등국내 가수들.홍콩의.사대천왕'등 중국계가 아니다.교실내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도 중국 노래보다.꿍따리 샤바라'등 한국가요일 경우가 많다.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여학생은 방송국을 전전하는 오빠부대에도 일부 화교학생이 섞여있다고 말할 정도다.물론 농구경기장에도….말하자면 이들에게서 한국문화는 너무나 친숙해 자신들과 결코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디스코텍에 가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한국 학생들과 다르지 않다.다만 통큰 중국사람의 특성대로 한판 벌이면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논다는 게 큰 차이점.삐삐는 한반 학생중 약 80%가 갖고 있는 필수품 단연 1 호다.
또 요즘처럼 찬바람 부는 계절이면 한국 학생들과의 미팅 바람이 불기도 한다.매우 제한되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이 미팅은.발이 넓은'몇몇이 자신이 아는 학원.교회등의 한국 친구들을 총동원,만남을 주선한다.
현재 서대문구연희동 한성화교학교 학생 1천1백명중 어머니가 한국인인 경우는 약 3백명.매년 10%이상씩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이 한국사람과 맺어지는 걸 막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시킨다.“몸은 한국에 있지만 대국의 자존심을 지켜라”는게 그 요지다.
그럼에도 신세대들의 결혼관은 의외로 확고하다.“마음만 맞으면누구라도 무방하다”는게 10대들 대부분의 생각.핏줄과 전통을 생명처럼 중요시하는 기성 중국인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이런 화교 신세대들에 대해 중국대표부 위안 숴장(原所强.
42)씨는“특히 언어를 잊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原씨의 조사에 의하면 말은 잘 해도 글을 제대로 못쓰는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하지만.걱정마라!'하고 외치는 화교 신세대들이 많다.이들은.
야자나무가 있으면 그 아래 중국인이 세명은 있다'는 중국인 특유의 생존력으로 충분히 한국사회에 적응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특히 통일에 관한 이들의.어른스러움'은 놀랍다 .
고3 무구이샹(慕桂香)양은“중국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어요.
주위 친구들도.빨리 통일이 됐으면'하는 생각 뿐이랍니다.우린 한 동포잖아요”라고 말한다.동시통역사를 꿈꾸는 이 여학생은 내년 여름 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을 쉰 뒤 국내 대 학에 지원할예정이다.외국학생에 대한 특혜가 점점 줄어드는데다 신랑감을 구하려면 꼭 대만 대학에 다녀야 된다는 아버지에게“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직업여성이 되고 싶다”며 설득에 성공했다.
“콤플렉스 없이 열심히 살래요.”화교 신세대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을 한다.어느 학생의 작은 소망의 말이 문득 가슴을 때린다.“우릴 다른 눈으로 보지 말고 친구로 대해주세요.”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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