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탄핵심판 憲裁 결정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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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법재판소가 어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함으로써 두달여 동안 지속된 정치.법률적 찬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헌재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 사건의 결론을 내린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평의의 비밀유지 원칙을 들어 끝내 소수의견을 비공개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 것이어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헌재 결정은 무엇보다 대통령 탄핵이란 초유의 사태로 빚어진 갈등과 분열을 법절차를 통해 해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만큼 우리의 법치와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입법부의 탄핵 소추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어서 민주주의의 한 축인 3권분립의 원칙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입법부든 사법부든 대통령 탄핵 소추와 탄핵 심판이라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밟아본 것도 헌정사의 귀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비상 상황에서 별다른 혼란 없이 총선을 무사히 치러내는 등 국정이 순항한 것도 이번 사태의 소득이다. 우리 사회가 인치(人治)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굴러갈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의 결정문을 통해 대통령의 재신임 투표 제안 등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 됐던 부분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어준 것도 주목할 만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선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공정한 선거가 실시될 수 있도록 총괄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선거에서 중립 의무를 지는 공직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회의 탄핵안 처리와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처리했음을 확인한 것도 의미있는 대목이다. 여기엔 국회의 탄핵 소추를 수구니 꼴통 보수니 하며 손가락질한다거나 비난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번 결정에 불복해선 안 되듯이 탄핵에 찬성한 세력이나 집단을 매도해서도 안 될 일이다.

법 절차가 마무리된 이상 이제는 마음속 앙금을 털어내고 서로가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사태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겨 우리의 정치와 법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할 책임이 여야 정치권과 국민 모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