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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안 받겠다” 도이체방크 ‘배짱’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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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세계 각국에서 돈을 주겠다는 정부와 안 받겠다는 은행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을 놓고 은행과 정부가 ‘동상이몽’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은행 지분 매입은 정부 입장에선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는 정책이다. 금융시장에 퍼져 있는 불신을 씻어내고, 확충된 자본으로 가계·기업에 대출을 늘리도록 독려해 돈이 돌게 하겠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은행에는 ‘양날의 칼’이다. 당장 도움은 되지만 이미지 추락을 피할 수 없다. 정부와 여론의 질책과 임원 연봉 삭감 등 경영 간섭도 염려된다.

최근 독일에서는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요제프 애커만 최고경영자(CEO)는 2일 “우리는 튼튼하다”며 공적자금 신청 계획이 없다고 선언했다. 반면 전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금융시장의 위기를 맞아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만큼 은행들도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참여를 압박했다.

도이체방크는 3분기에 4억1400만 유로의 순익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74% 줄어든 저조한 실적이지만 여전히 흑자를 내고 있어 정부 돈까지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은행 간 대출 보증에 4000억 유로, 은행 지분 매입에 800억 유로 등 총 5000억 유로(약 6370억 달러) 규모의 금융사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공적자금을 신청한 곳은 바이에른란데스방크(LB)와 히포리얼에스테이트(HRE)뿐이다.

미국에서도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에 반발 기류가 있었지만 지난달 중순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9개 주요 은행 CEO를 모아놓고 “지원 확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고 ‘협박’한 끝에 동의를 받았다. 국내에서도 정부의 대외 채무 지급보증을 놓고 유사한 기류가 흘렀다.

일부 사정이 나은 국내 시중은행에서는 한때 정부 보증을 굳이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야 하는 데다 보증 수수료 1%를 물어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금융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참여하는 걸로 결정이 났다”면서도 “가능한 한 정부 보증 없이 자력으로 외화를 들여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SC제일·씨티 등 외국계 은행들은 공식적으로 “아직 확정이 안 됐다”는 입장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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