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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 위원장 “수도권 규제 완화는 돈 안 드는 경기부양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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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만난 사람 =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10월 30일 정부가 수도권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하자 지방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기업들이 더 이상 지방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틀 뒤 서울 광화문 집무실에서 수도권 규제완화 방안을 주도한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수도권 규제완화 이후 해외로 나가려던 기업 투자가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고, 그에 따라 더 걷히는 세금을 지방발전을 위해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그는 “수도권 규제 완화는 수도권과 지방이 다같이 사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10월 29일에도 했다. 대통령 경제특보이기도 한 그에게 국내외 금융·경기 불안에 대한 정부 대응책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이때 그는 “주요국들의 개별적인 대응과 국제공조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국제 금융불안이 차차 해소될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실물경제의 침체를 막기 위해 통화·재정 정책과 함께 기업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개혁으로 내수 진작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경제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선 “지금은 경제팀을 바꿀 게 아니라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답했다.

-이번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가 경제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데 기여하겠는가.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본다. 특히 대외경제 여건 악화에 따른 실물경제의 위축을 완화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외국으로 나갈까 말까 망설이던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도록 결정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론 기업들이 수도권에 투자할 것이므로 지방은 기업 유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야단이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려던 기업보다 해외로 이전하려던 기업이 더 많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따라서 수도권 규제 합리화로 이들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 거기서 추가적으로 생기는 재원을 지방발전에 쓰게 된다면 그것이 수도권과 지방 간의 상생방안이 아닌가 싶다.”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지 않다. 전에도 정부는 지역선도산업 투자계획을 포함한 광역경제권 계획, 군사시설보호구역 조정, 개발제한구역 조정 등 지방발전을 위한 여러 대책과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는 단순한 시차적 개념보다 ‘지방발전을 생각하지 않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있을 수 없다’는 정부의 기본 철학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이번 조치엔 수도권 규제 합리화에 따라 추가 확보할 재원으로 지방경제발전기금을 마련, 지방 발전에 쓴다는 방안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다 해도 ‘수도권은 첨단산업 위주로 하면서, 지방은 재래산업만 하라는 얘기냐’는 반발이 있는데.

“수도권에서 너무 지나친 첨단산업 입지 규제를 합리화해 준 것이지 수도권 첨단산업에 특별한 대우를 해 준 것이 아니다. 지방은 저마다 선택과 집중에 따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첨단산업을 유치할 수 있다.”

-얼마나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나.

“불투명한 해외경기 탓에 정확한 예측을 하기는 힘들다. 일부 경제단체가 이번 조치로 앞으로 2~3년 내 4조~5조원의 투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 효과를 기대하는 것 치고는 실제 완화 조치를 시행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건 아닌가.

“이번에 취한 수도권 규제 합리화 방안의 대부분은 행정부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도 법적 절차를 밟는 시간이 걸린다. 입법예고, 규제심사, 법체제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가 나고, 공포하는 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수도권을 과밀억제·성장관리·자연보전 권역으로 나눈 기본 틀은 그대로다. 공장 총량제도 유지했다. 더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지 않나.

“이번 규제완화와 중첩규제 철폐로 수도권에 있는 기업들의 애로사항은 거의 해결될 것으로 본다. 공장총량제도 크게 완화돼 신·증설에 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결과를 잘 분석한 뒤 또 필요하다면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된다.”

-제도적으로는 수도권과 지방 발전을 어떻게 연계시킬 생각인가.

“관련 부처 협의를 거쳐 이미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기금을 신설하는 방안, 기존 기금에 지방경제 발전을 위한 특별계정을 신설하는 대안 등이 검토될 것이다. 재원 마련에 관해서는 기업 활동에서 더 걷히는 세금, 개발분담금 형태의 재원 등 모든 방안을 검토해 결정할 것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번지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그래서 경제팀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일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가. 정부조직 개편, 인사 청문회, 쇠고기 파동 등을 거쳐 이제 본격적으로 일하려고 나서려는 때다. 더구나 지금은 국내외 경제불안에 대해 시의 적절한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경제팀을 바꿀 때는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은 어떤가.

“이 대통령은 한번 사람을 믿으면 오래 가는 분이다. 대통령도 현재의 팀이 그대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한·미 통화 스와프로 외환시장도 안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실상 경제부총리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개별부처 장관들은 난상토론을 거치더라도 강 장관을 중심으로 국내외를 향해 모두 일치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각국이 공조해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는데도 금융불안이 여전한 이유는 뭔가.

“선진국들이 개별적으로, 또 공조를 통해 마련한 대책들을 집행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또 그 정책 효과가 하루아침에 나타나기는 어렵다. 실물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도 국제 금융불안의 해소를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그러나 국제공조에 의한 대응조치들이 효과를 내면서 불안은 점차 해소될 것이다.”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다고 보나.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 빠르고 과감하게 대응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럽 주요국들과 일본은 이미 경기침체(recession)에 들어간 것 같고, 미국도 이미 불황에 접어들었거나 올 4분기나 내년 1분기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오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주목해야 한다. 20개국 정상들이 당면 경제이슈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G20 정상회의에서 어떤 합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유사한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제 금융체제 개편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하루 회의에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합의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실물경제 침체가 깊고 길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지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현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나.

“세계 13번째 경제 규모인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이 가장 건전하다. 외환보유액도 세계 여섯 번째다. 금리도 상대적으로 높아 경기부양을 위해 더 내릴 여유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기 진작을 위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 사정이 그렇게 좋다면 왜 국내 금융불안이 그렇게 심한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10년 전 외환위기의 경험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1997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 금융회사, 그리고 정부 재정과 외환보유액 모두 건전하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믿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불안이 불안을 부추기고, 그 불안이 침체를 가져오는 ‘자기실현적 예언’은 갖지도 말고 믿지도 말아야 한다. 한 가지 우리가 더 애써야 할 점이 있다면 우리 경제의 실상을 국민에게, 또 해외에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다. 앞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철저히 해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 빨리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어떻게 안정될 것으로 보는가.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과 함께 국내 금융불안이 차차 가시게 되면 실물경기 진작을 위해 취했거나 앞으로 취할 각종 시책의 효과도 시차를 두고 나타날 것이다. 또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10월에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것도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과 함께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 경기는 내년 하반기부터는 서서히 나아질 것으로 본다. 따라서 올해를 넘기고 내년 중반이 되면 실물경제가 완만하게나마 좋아질 것으로 본다.”

-내년 경기가 크게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게 중론인데.

“바로 그 이유로 금융·재정 정책과 함께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개혁과 이를 통한 내수 진작을 더욱 꾀해야 한다. 특히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지금 과감히 풀어야 한다. 규제 완화는 돈이 안 드는 경기 부양책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도 이런 점에서 시의 적절한 것이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 사공일 위원장

‘MB노믹스의 전도사’로 불린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1970년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 정책자문역을 맡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올 초 다보스포럼에 당선인 특사 자격으로 참석해 새 정부의 비전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후에는 대통령특보로서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시장경제 이론가로 통하는 그는 5공 시절엔 대통령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본인이 설립한 세계경제연구원의 이사장으로서 국제 경제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 왔다. 경북 군위 출생으로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대 교수로도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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