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中企人25時>청록소파 유은조사장-기술만으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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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내 분야에서 최고의 장인이 되자'.외제소파 우리가 막는다'. 경기도의정부시민락동에 위치한.청록소파'.
2평 남짓한 사무실 벽 곳곳에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구호가 붙어있다.부도난 기업에 으레 있음직한 경영위기 돌파에 관한 구호는 보이지 않는다.소파만들기 20년.이 회사 유은조(兪殷朝.
38)사 장은 원단을 자르고 소파를 만드는 일에 자신의 젊음을쏟아부었다.
그는 76년 중학교를 졸업한 뒤 견습공 생활부터 시작,81년엔 전국기능경시대회 소파제작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낸 기능인이다.이후 줄곧.장사꾼'이 아닌.기능인'이길 고집해왔다.자신이 만든 소파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의 발목을잡은 것이다.87년 단돈 5백만원으로 창업해 10년동안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하다 일산 E마트에 개인매장을 차려 자신의.작품'을 평가받고자 했던게 94년9월..로리어트'라는 자체상표도 만들었다.처음에는 호평을 받아 물건 대기에 바쁠 정도였다.지금의 공장 인근에 제2공장을 냈다.13명의 직원을 더 채용해 25명으로 식구가 늘었다.
그러나 이듬해초 갑자기 매상이 뚝 떨어졌다.그가 만든 천소파의 수요가 생각만큼 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공장이 둘로 나뉘면서 관리가 제대로 안돼 생산성도 급락했다.매월 1천만원이상의 적자를 내다 결국 지난해 11월말 2억5천만원의 부도를 냈다.
채권자들이 한밤중 집에 들이닥쳐 병을 깨뜨리거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도피하지 않았다.앉아서 모든 것을 달게받기로 한 것이다.“공장이 망한 것이지 내 기술은 살아 있다.
도망가지도 않았지 않느냐.시간을 달라”며 채권자 들을 설득했다.집요한 설득을 받아들이는 채권자들이 늘어났다.직원들도 남아 공장을 계속 돌렸다.
兪사장은 사실 부도를 면할 수도 있었다.부도직전 국내 유명 가구메이커로부터.물건을 납품한다면 시설투자비 1억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또 부도후에도.부채를 다 해결해 줄테니까 함께 일하자'는 친구의 제의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 다..돈은 벌 수 있겠지만 청춘을 바쳐 만든 로리어트라는 고유상표를 잃을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부도난지 1년.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 1억원가량의 빚을 갚았다.알음알음으로 제품이 알려져 주문도 많이 늘었다.
兪사장의 1차적인 목표는 부채청산이다.다음은 밀린 부가가치세1천만원을 갚아 사업자등록증을 되찾아 무자료 편법거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兪사장은“돈을 벌려면 나처럼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한다.
기술에만 집착한 자신의 경영방향이 기업성장에 걸림돌이 됐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품질 하나로 계속 승부하다보면 언젠가는 세계시장에 우뚝 설 날이 올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

<의정부=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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