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마라톤 우승 이봉주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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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발'로 일어선 이봉주는 정작 발이 비정상이다.왼발(2백55㎜)이 오른발보다 5㎜ 긴 짝발이다.이때문에 달리다 한쪽 발톱이 뭉개져 피투성이가 된 일도 있다.지금은 소속회사(코오롱)에서 특수제작한.짝신'을 신고 달리고 있다.또 눈이 유난히 작아쌍꺼풀수술을 했으나 왼쪽 것이 풀리는 바람에.짝눈'이 된 것도,이(齒)가 엉망이라 늘 치통에 시달린 것도,나이(26)답지 않게 성긴 머리숱까지도….
아무리 뜯어봐도 흠 투성이다.이봉주가 올림픽 직후 새로 얻은.달리는 종합병원'이란 별명 그대로다.흠이 많아 그의 마라톤 출세기는 더욱 감동적이다.
그가 육상에 입문한 것은 충남 천안 천성중때.집에서 학교까지시오리(十五里)길을 숨도 안쉬고 달린다는 소문이 친구들을 통해체육교사의 귀에 들어가면서 육상부 스카우트 손길이 뻗쳐온 것이다.봉주도 솔깃했다.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부모의 반대.맏아들(승주.37.회사원.경기도성남시)이 레슬링을 하겠다고 우기다 끝내 가출해버린 적도 있었던 터라 부모는 봉주에게 애당초 운동의.맛'을 못보게 하려고 한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고들 틈은 거기에 있었다.형의 가출을 빗댄.시위'.그것은 특효를 발휘했다.부모는.이러다 막둥이마저 집을 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형의 가출이 그의 오늘을 있게 한 셈이다.
그러나 스타의 길은 멀었다.89수원체전 10㎞단축마라톤에서 3등을 차지하고서야 겨우 이름이 알려졌다.이듬해 10월 마라톤데뷔전(청주체전)2위,91전주체전 1위를 차지하며 반짝했던 그의 이름은 92년 황영조의 출현으로 쏙 들어갔다 .
93광주체전(10월).93호놀룰루국제마라톤(12월)우승에 대한 보상은 기껏.제2의 황영조'.애틀랜타 올림픽행 티켓이 걸린96동아국제마라톤(3월.경주)에서 국내 최고(종합2위)를 차지할 때도 세인의 눈길은 선두 이봉주보다 한참 뒤 에서 절뚝거리며 달리던 황영조에게 더 많이 쏠렸다.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비로소.제이름'을 찾은 이봉주가 지금껏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한 것은 무려 15번.그중 14번을 완주했다.지난 7년동안 뛴 훈련거리만 약 8만㎞(하루평균 30여㎞) 를 달렸다.시드니 월계관을 위해선 앞으로 수천㎞를 더 달려야 한다.
[후쿠오카=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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