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과거 보는 형제끼리 도우면 좋으련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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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지음, 김영사
352쪽, 1만3000원

“옛사람은 공부란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난다’고 했다. 너희가 날마다 나아갈 줄 모르니, 날로 퇴보하여 마침내 하잘 것 없는 사람이 되고 말까 걱정된다.”

조선시대 대유학자 이황이 1547년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영남학파의 거두이자 일본 유학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그였지만, 자식 공부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황은 다른 편지에서도 자식들에게 과거시험을 보라고 채근하고, 산사에 들어가 공부하라고 권하는 등 분발을 촉구했다.

이황을 비롯해 유성룡·박세당·안정복·강세황·박지원 등 조선시대를 빛낸 학자와 문인 열 사람이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90여 편을 묶은 책이 나왔다. 한 시대를 빛냈던 인물들이지만 편지 속에 나타난 이들은 진솔하고 편안하다. 수백 년 전의 편지들이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얘기는 역시 과거시험 등과 관련해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조선 중기 문인인 백광훈은 아들에게 절에 들어가 공부하라거나, 지금 읽는 책을 다 떼지 못했다면 집에 올 생각은 말라고 쏘아댄다. 임진왜란 당시 국란을 수습한 유성룡은 전쟁으로 공부할 시기를 놓친 자식들의 나이를 자주 언급하며 분발을 촉구한다. 과거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비결이나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소개한 글들도 눈에 띈다. “마음 같아선 과거시험장에서 형제끼리 도왔으면 좋겠지만 이 같은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대목까지 보인다.

이외에도 “집안에 무당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라(이황)” “내 제사 때 술을 올리지 마라(강세황)”등의 당부는 물론 아이를 낳은 며느리에 대한 안부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장성해서 벼슬길에 나간 아들에게 올바른 처신을 당부하는 내용에선 절절함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인 박지원은 손수 고추장과 쇠고기 볶음을 만들어 서울 집에 보내고 자식들이 그 맛에 대해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투정한다. 이외에도 부족한 쌀을 보충하기 위해 도토리 가루를 섞어서 먹으라거나(백광훈), 쌀을 마련하려 풋앵두를 따 시장에 내놓는 등의 사연(박세당)은 관직에 몸을 담아도 가난을 면키 힘들었던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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