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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식탁] 수육 한입, 소주가 짝짝 달라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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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구기동 '싸리집'에서 민속학자 주강현씨를 만났다. 초면이었지만 통성명을 하지 않아도 한번에 알아볼 만큼 낯익다. 몇 년 전 한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해 개고기 식용에 관해 시원스레 논박을 펼치던 이가 바로 그이다. 전화로 개장국 한 그릇을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했을 때 대번 개고기가 희화화되는 것은 싫다 해서 어렵사리 만난 것이다.

싸리집 마당에는 늦봄 오후의 볕이 고여 다글다글 끓는다. 식탁에 놓인 질그릇 속에서 개장국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첫술은 구수한 된장맛이다. 된장과 간장 등의 장을 풀어 끓였다 해서 개장(醬)국이다. 숟가락에 고깃점은 올라오지 않는다. 우려낸 뼛국물에 된장을 섞고 마늘 등의 갖은 양념으로 맛을 냈다. 국물 위로 고깃국에서 보이는 기름은 뜨지 않는다. 푹 익어 흐드러진 토란대는 부드럽게 씹히고 설 익은 깻잎은 향이 진하다.

전형적인 농경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노동 제공의 수단인 소는 식용으로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대신 개가 육고기의 섭취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시골 농가에서 잔치 준비로 개를 잡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산 정약용이 권하는 개고기 요리법도 찾아볼 수 있다. 개도 흔한 것은 아니었다. 살코기는 윗전의 몫이었고 남은 뼈와 내장으로 민중들은 여럿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개장국을 끓였다. 개의 내장을 넣어 끓여 개장(臟)국이 된 듯하다고 싸리집의 임옥자 사장이 한 마디 거든다.

주강현씨는 스무살이 넘어서야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함께 어울렸던 노동자들이 거리낌없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끼어들었다. "논리적 극복"은 되었지만 맛에 익숙해지지 않아 그 후로도 먼저 찾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다지 개고기를 즐겨먹는 편은 아니다. "나는 '육식의 종말'을 믿는 생태론자이며 채식에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다.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가급적 어떤 고기거나 덜 먹어야 한다고 믿는다." ('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 중에서)

그는 보신탕이니 사철탕.영양탕으로 불리는 개장국의 다른 이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신 음식으로 치부되면서 개고기는 일상 음식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개고기 또한 설렁탕이나 곰탕처럼 일상 음식일 뿐이며 그런 일상 음식에 엽기적인 논쟁이 따라붙는 것은 얼토당토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는 사이 김이 나는 수육 냄비가 놓였다.

수육에는 데친 부추와 파, 깻잎을 곁들인다. 장은 들깨와 마늘.고춧가루.고추장을 섞어 만들었다. 고기에 야채를 얹어 장을 듬뿍 발라 먹는다. 개고기의 육질은 육안으로도 우리가 즐겨먹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와 달라 보인다. 고기 색은 거무스름하고 고깃결은 가늘어 부드럽게 씹힌다. 고깃점 사이에 지방이 끼어 있는데 층이 두텁지 않다. 개고기가 불포화 지방산으로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혈액에 엉겨붙는 포화 지방산과는 달리 혈액 순환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싸리집에서는 다른 개고깃집과는 달리 방아잎을 쓰지 않는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노린내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개고기 냄새에 거부 반응을 덜 느끼도록 쓰는 방아잎은 향이 너무 강해 개고기의 참맛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몸에 좋은 부추와 깻잎은 향이 강하고 맛이 독해 날것으로는 충분한 양을 섭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고기와 함께 한번 쪄내면 숨이 죽어 양이 절반가량으로 줄어들고 독한 성질도 가라앉는다. 평상시 먹을 수 있는 양의 두세 배는 거뜬히 먹을 수 있다. "개고기가 보신 음식으로 이름난 것은 개고기 자체로도 일리가 있는 말이겠지만 이처럼 함께 곁들이는 된장이나 들깨.마늘.부추 등 각종 야채 때문이 아닌가 해요." 수육 한 점에 소주 한 모금,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개고기를 먹은 뒤에는 찬 맥주는 마시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애써 섭취한 더운 기운을 찬 것으로 훑어내리는 것을 경계한 듯하다. 아무래도 개고깃집은 복날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름은 불(火)이다. 삼복은 화기가 왕성하면서도 쇠(金) 성질을 띤다. 쇠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쇠의 기운이 강한 개를 먹는다. 이열치열의 원리다. 반면 북에서는 주로 겨울에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애완 문화가 자리잡지 않은 북한에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단고기 끓이는 법이 소개될 정도다.

개는 1년 6, 7개월 자라 35㎏ 정도 나가는 것을 쓴다. 가마에 둘둘 말아 불에 태우면 짚에 그을리면서 짚 탄내가 고기에 밴다. 고기는 삶지 않고 찐다. 찜통 아래 받친 애벌 국물은 버리고 고깃점을 발라 수육으로, 뼈는 다시 푹 고아 개장국을 만든다. 수육을 작은 가마솥째 내는 것도 맛있는 고기맛을 위한 임옥자 사장의 배려다. 개고기의 조리법을 알기 위해 임옥자 사장은 옛 문헌을 뒤졌다고 한다.

주강현씨는 광저우의 뒷골목을 뒤져 개고기 맛을 보았다. 그곳의 개고기는 기름기가 많아 느끼한 것이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런 반면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장국은 함경도식 '개자이'를 연상시켰다. 된장을 풀지 않은 개장국이 흡사 나주 곰탕맛 같았다. 살코기에 야채를 넣어 고춧가루로 버무린 개무침도 그곳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식사였다.

뜨거운 논쟁에도 불구하고 개고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섭취하는 4대 고기 중 하나다. 뒷골목에는 사철탕이나 보신탕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이 한두 군데 자리잡고 있다.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개고기를 찾는다. "왜 한국만이 문제가 되는가? 중국이 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우리처럼 개고기 논쟁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음식 강국으로 알려진 데다 개고기를 떳떳한 음식으로 홍보했기 때문입니다." 도축과 유통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비위생적인 도축 방법은 물론이고 피와 내장 처리에서 오는 환경 오염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주강현씨를 제외한 동행 모두 개고기는 처음이다. 맛만 본 이도 있었고 맛있게 그릇을 다 비운 이도 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개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는 야만과 문명의 가름대가 아닌 그저 식성의 문제다. "우리 맥주나 한 잔 합시다!" 개고기를 먹은 뒤에는 찬 물이나 찬 맥주는 먹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잊은 것일까, 그가 벌떡 일어나 앞서 나간다.

하성란 소설가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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