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국책사업>평창 '유리溫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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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원도평창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장평쪽으로 30여분간 버스를 타고 가면 재산리에 거대한.유리성'이 나타난다.
선진국의 농산물에 맞먹는 경쟁력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정부가 92년부터 건설한 유리온실이다.투자된 금액은 모두 34억원.14억원은 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했고 20억원은 3년 거치 17년상환의 연리 5% 융자였다.
이 지역의 김영학(金榮鶴)대표등 평창군농민 14명이 법인으로영농조합을 세워 정부돈을 받고 모자라는 돈은 자신들의 토지와 집을 담보로 잡혀 갹출했다.네덜란드 기술진이 10개월간 지은 그야말로 최첨단건물이다.
지붕과 외벽을 유리로 만들어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일수 있고 컴퓨터가 온도.습도등 모든 환경을 자동으로 조절한다.실내온도가18도 이하로 내려가면 보일러가 스스로 작동하고 습도가 떨어지면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뿌려진다.현재 4동의 유 리온실,6천여평의 땅에서 4만여포기의 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지은 이 첨단 유리온실의 성과는 무엇인가.법인대표 金씨는“시설유지비.인건비를 포함해 운영비가 1년 동안 8억5천만원”이라고 말했다.
평창은 추운 지역이어서 한겨울에 기름값만 1억5천만원이 든다고 한다.그는“94년1월부터 수확이 시작됐는데 토마토값을 잘 받을 때는 연간 1억~1억5천만원 정도의 이익이 나오고 가격이나쁘면 그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 수익을 조합원 14명으로 나누면 1년에 8백만원이 채 안된다. 농민들이 수천만원씩 빚을 얻고 정부투자가 무려 34억원이나 들어간 곳에서 나오는 수익치고는 턱없이 적다.아무 일도 안하고 그 돈을 은행에 예금했을 경우 받을 이자의 3분의 1도안된다.그래서 조합원 14명중 6명만 유리온실에서 일 하고 나머지는 자기 농사를 지어 생계를 충당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융자금상환이 시작됐다.이자와 원금을 합쳐 2억3천만원.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이 법인은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다시2억원을 융자받았다.
빚을 얻어 빚을 갚고 빚으로 운영하는 셈이다.정상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경영이다.과연 34억원이나 투자해 얻은 게 무엇인지,외국농산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이곳에서 그처럼 비싼 생산비를 들여 만들어진 토마 토가 경쟁력이 있을지 모든 게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사업이 시작됐을까.이 법인의 박대영(朴大榮)총무는“처음에는 비닐하우스를 하려고 신청했는데 군청 차원에서 시범사업으로 지정돼 유리온실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발적이 아니라 정부에서 지정하니까 했다는 말이다.이 법인은유리온실을 시작한 뒤 2년 연속 농수산부장관상.농어촌기능대상을받았고 올해는 농업과학화를 잘했다고 국무총리상까지 받았다.이쯤되면 포기할 수도 없는 셈이다.
朴씨등 농민들은“앞으로 7년쯤 지나 원리금상환이 끝나면 그래도 수익이 좀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그러나 빚 얻어 빚 갚는 마당인데 나중에 그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지에 대한 대안은 없다.농민들은 말은 안하지만“나중에 정부가 탕 감해 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평창=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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