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수 살려 금융위기 넘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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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02년에 산 집을 지난해 팔았다면 10배 가까이 올랐을 거다. 지금?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텐데 누가 사나.”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30대 시민 쑨(孫)의 말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거래세 일시 면제 등 대대적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다. 주식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현지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40대 여성 주메이(九妹)는 “지난해 실직 후 주식에 손을 댔다가 10년간 모은 10만 위안(약 2100만원)을 날렸다”며 “정부가 뭐라든 중국이 세계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고 있는 걸 서민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의 눈이 13억 중국인에게 쏠리고 있다. 중국의 성장 엔진이 멈추면 지금보다 훨씬 강한 한파가 글로벌 경제에 밀어닥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엄청난 외환보유액과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거란 기대도 줄고 있다.


◆흔들리는 산업=지난달 중국 철강업체의 조강 생산은 한 해 전보다 9.1%나 줄었다. 8년 만의 첫 감소다. 자동차·조선·건설 모두 철이 있어야 돌아간다. 철강 수요가 줄었다는 건 이들 산업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인 애널리스트는 “조선 업체의 경우 계약 취소까지 생기고 있다”고 귀띔했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아시아판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주거용 부동산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정도다. 부동산발 금융위기가 터진 미국(4.6%)의 거의 두 배다.

맥쿼리증권 베이징사무소의 폴 카베이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시장에 중국 경제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망은 썩 밝지 않다. 지난달 중국 70개 도시 집값은 한 해 전보다 3.5% 오르는 데 그쳐 상승률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선전(深) 등 일부 지역은 이미 고급 아파트 값이 반토막 났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 건설업 고용도 줄게 마련이다.

매년 1500만~2000만 명씩 대도시로 몰려드는 중국 농민이 주로 종사하는 게 건설업이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실업자가 쏟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내수 살아날까=세계 경제 침체로 수출 전망이 어두워지자 중국 정부는 내수 부양에 온 힘을 쏟고 있다. 25일 철도 등 공공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농촌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쏟아낸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소비자의 닫힌 지갑이 쉽게 열릴 것 같지는 않다. 금융사가 많이 모여 있는 베이징 진룽다제(金融大街)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장(張)은 “경제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데 누가 소비를 늘리겠느냐”며 “당분간 한 푼이라도 아낄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 증권사인 중신(中信)증권의 뤼저취안(呂哲權)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는 지금 발전 모델의 전환기를 맞았다”며 “내년이 가장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언제까지 재정을 쏟아 부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중국은 지난달 말 현재 1조2500억 위안(GDP의 4.7%)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 흑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세수는 줄 게 뻔한데 인프라 투자와 실업자 지원에 들어갈 돈은 늘고 있는 게 문제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그래도 기댈 것은 중국의 내수 부양책이다. 중국 정부는 도농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민이 가전제품을 살 경우 판매가의 13%를 보조금으로 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당장 효과를 낼 거라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투자증권 베이징 리서치센터 주시쿤(朱希昆) 소장은 “소비가 중국 경제를 이끌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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