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16일 개봉 "화니와 알렉산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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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만한 것」이란 여유로움으로 자신의 지나온 삶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건 부럽고도 마음 따스해지는 일이다. 스웨덴 출신의 거장 잉그마르 베리만(78)은 65세때 만든 은퇴작 『화니와 알렉산더』(16일.동숭시네마텍 개봉)에서 그런 「낙관」을 보여준다.그는 이전 작품들에서는 죽음과 대결하는 인간의 실존적인 고뇌.소외감.사랑의 파멸등 비관주 의와 분노의 색채를 보여줬다.때문에 노년에 이르러 내린 그의 희망적인결론은 젊은이들에게는 아직 「미지의 세계」에 속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50)감독도 올해 칸영화제에 새로 내놓은 『스틸링 뷰티(Stealing Beauty)』에서 세상에 대해 따스한 눈길을 보여줬다.노장들의 관조는 작품을 「힘」보다「사랑」으로 감싸는 것일까.
베리만 감독은 서구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예술가」란 찬사를 듣지만 그의 작품이 국내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은 『화니와 알렉산더』가 처음이다.은퇴작이 첫 개봉작인 셈이다.비디오로도 『베를린의 밤』『일곱번째 봉인』 두편이 나와있을 뿐이다.주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철학적 작품들을 만들었기 때문에그의 영화세계는 난해한 편이다.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장사가 안된다고 수입이 안돼왔다.
하지만 『화니와 알렉산더』는 그의 작품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평이다.3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흥행이 그런대로 잘됐고 84년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외국어영화상등 4개부문을 수상했다.실제로 작품은 환상과 꿈의 세계가 곁들여진 가족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화니와 알렉산더는 남매.극장을 운영하는 스웨덴 상류층 집안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던 두 남매는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가 차갑고 폭력적인 목사에게 속아 재혼하면서 억압과 폭력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종교적인 세계에서 오히려 증오를알게된 알렉산더는 베리만 감독의 어린시절 분신이라고 일컬어진다.목사의 아들인 베리만은 때로는 실제로 다락방에 갇히는등 아버지의 엄격함 속에 성장해 가출하기도 했고,연극에서 유일한 위안을 얻어 일찍부터 연극무대에서 활동 했다.
베리만은 알렉산더의 눈을 통해 탄생과 죽음,사랑과 증오,섹스와 돈등 어른들의 현실을 담담하게 들여다 본다.그 눈에 비치는것은 서로 상반되는 두가지의 세계다.하나는 사랑과 이해가 넘치는 행복한 가정이고,또 하나는 계부인 목사를 통 해 보여지는 냉혹하고 위선적인 종교의 세계다.베리만은 두 남매가 가족의 도움으로 목사의 회색빛 성에서 탈출,다시 따스한 가정의 품에서 행복을 찾는 것으로 결말을 내린다.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사랑이라는 이야기다.
『화니와 알렉산더』는 베리만의 개인적 삶의 투영인 동시에 연극적 구성,마법과도 같은 환상적 화면,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등이전의 작품세계를 「낙관적」인 시선으로 정리한 완결판이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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