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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함과 촉촉함의 절묘한 만남, 돈가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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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14면

포크와 나이프 없이 젓가락으로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썰어져 나오는 일식 돈가스

서울 명동에 가면 찾게 되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돈가스다. 이미 이곳의 명물이 된 ‘명동돈가스’는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흔히 먹던 돈가스와 확연히 구분되는 맛에 이끌려 명동에 들를 일이 있으면 종종 찾는 곳이다. 튀김옷의 바삭함과 돼지고기의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생각하면 먼저 군침부터 돈다. 1983년에 문을 열었으니 그 역사도 벌써 사반세기나 됐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돈가스는 서양 음식을 일본식으로 만든 대표적 음식 아닌가? 돈가스라는 이름도 일본어로 돼지를 말하는 ‘돈(豚)’과 영어 커틀릿의 일본어 표기인 ‘가쓰레쓰’가 합쳐져 생긴 거잖아.”

“그렇죠. 일본은 서양에 문호를 전면적으로 개방한 메이지 시대부터 서양 요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하지만 1200년 동안 육식을 금기시해 왔던 일본인들로서는 서양의 육류 요리에 친숙해지기 쉽지 않았겠죠. 어찌 보면 돈가스의 탄생 과정이 서양 요리를 수용하고 이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바꿔 가는 과정의 진수라 해도 지나치지 않죠.”

“그런데 서양 요리에서 커틀릿이라고 하면 정확하게 뭘 말하는 거지?”
“음…. 좀 복잡해요. 영어의 커틀릿이 프랑스어의 코트레트(ctelette)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죠. 코트레트는 갈비뼈가 붙어 있는 채로 썬 양 등심을 말하는데, 커틀릿은 양뿐만 아니라 송아지·돼지의 갈비뼈와 함께 자른 등심을 가리키죠. 그리고 이 고기를 그대로 팬에서 구운 것도 커틀릿이라 하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송아지나 양고기를 잘라 두들겨 얇게 펴서 빵가루를 입혀 팬에 기름을 두르고 갈색이 나도록 구운 요리를 커틀릿이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빵가루를 입혀 굽는 고기 요리인 커틀릿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는 말이지.”
서양에서 커틀릿은 여러 형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슈니첼’인데 송아지 고기 커틀릿이다. 이탈리아에도 밀라노풍의 송아지 고기 커틀릿인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가 있는데, 이것이 15세기 또는 16세기에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슈니첼을 탄생시켰다는 설도 있다. 영국에서도 송아지나 양고기로 만드는 커틀릿이 있다. 이런 것들이 일본 돈가스의 유래로 보인다.

일본의 서양 요리 수용 과정을 재미있게 서술한 『돈가스의 탄생』을 보면 돈가스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하나의 드라마였다고 한다. 육식이 해금된 1872년 이후 돈가스가 출현하기까지는 60여 년의 세월이 더 흐른다. 커틀릿이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돈가스로 탄생하기에는 그 시간만큼 수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먼저 송아지나 양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얇게 두들겨 펴는 고기는 두툼한 고기로 바뀌었고, 유럽에서는 고운 빵가루를 쓰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알갱이가 큰 빵가루를 사용했다. 돈가스의 바삭함은 바로 알갱이가 큰 빵가루 때문이다. 게다가 기름을 두르고 굽는 대신 기름 속에 넣고 튀김으로써 바삭함을 더했고, 고기의 육즙이 빠져 나가지 않아 두툼하면서도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낼 수 있었다. 먹는 방식도 바뀌었다. 튀긴 고기를 미리 썰어 접시에 담아냄으로써, 나이프나 포크가 아니라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 했다. 또한 밥을 같이 먹을 수 있게 내었다.

“외국 음식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이렇게 대단한 집념을 보이는 나라도 없을 거야.”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되 일본의 전통과 결합시켜 양자를 조화시킨다는 정신이 서양 요리의 흡수 과정에서도 그대로 녹아난 결과가 바로 돈가스의 탄생이죠.”

“이 집에는 ‘코돈불루’도 있는데, 네가 다닌 프랑스의 요리 학교 코르동 블루(Cordon bleu)하고는 무슨 관계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코르동 블루’라 불리는 요리는 얇게 편 두 장의 송아지 고기 사이에 햄과 치즈를 넣고 커틀릿처럼 만든 건데….”
코돈불루는 코르동 블루의 일본식 발음인데, 결국 만드는 방식도 일본식으로 바뀐 경우다. 더욱이 가스돈이라 불리는 돈가스 덮밥이나 고로케를 보면 일본인의 노력과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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