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金利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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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금리에 관한 논쟁의 역사는 무척이나 길다.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샤일록이 시장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자기입장의 정당성을 안토니오에게 설득하기 위해 성경이야기까지 인용하는 장면이 나온다.그러나 무이자로 돈을 빌 려주곤 하던 안토니오는 그를 경멸하고 욕한다.수전노 샤일록은 증오감을 숨긴채 음모를 꾸며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지만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가 파멸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어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당시,즉 15~16세기때 무역이 번 성했던 베니스의 금리는 연43.3%였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리수준은 샤일록의 시대만큼 높지는 않으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자를 위축시킬 만한 고금리라는 점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기업이 은행등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와 꺾기에 따른 부담까지 합친 실효금리는 연 15% 내 외라고 한다.이웃 일본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와 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이 비슷한 여타 개도국과 비교해 보아도 높은 수준인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 점을 알고 경쟁력 높이기 운동의 일환으로 금리인하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그러나 금리문제를 둘러싸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의견대립을 보여옴으로써 아직 정부의 노력이 충분한 결실을 보지 못한 상태라 하겠다.
양기관의 설립목적과 정책우선순위,그리고 조직상의 성격차이 때문에 통화공급 확대를 통한 금리인하에 관해 기본적인 입장과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통화가치의 안정을 제1 목표로 하고있는 한은에서는 통화증가가 궁극적으로 인플레 심 리를 부추겨 오히려 금리상승을 유발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오고 있다.반면 물가와 함께 성장과 고용의 안정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재경원 쪽에서는 장기적으로 한은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지 모르나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통화증가의 금리하락 효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경기가 둔화되고 있을 때라면 통화공급이 유발하는 인플레 효과가 크지 않아 장기적인 금리하락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차이가 정책실행에 있어 두드러지게 반영된 것이 지난 10월24일의 지급준비율 인하조치였다.지준율(支準率)을 인하하면 은행의 여유자금이 늘어나 대출과 통화공급이 증가하게 되고 이것이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은은 재경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준율을 낮추는 한편 총액대출한도를 줄임으로써 통화환수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것이다.통화공급의 확대조치와 환수조치가 동시에 발표됨으로써 금융시장의 혼란이 야기되었고 금리인하 효과는 그만 큼 약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통화정책의 지표를 총통화()로 할 것이냐,금리로 할 것이냐에 관해서도 두 기관은 의견대립을 보여왔다.재경원이 총통화의 정책지표로서의 한계를 지적하고 금리를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온데 대해 한은측은 총통화의 결함은 인정하나 아직 금리지표로 옮겨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논쟁의 배후에는 물론 두 기관의 통화관리에 관한 의견차이가 도사리고 있다.재경원이 금리지표를 중시하고 금리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곧 통화관리의 고삐를 풀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보아 한은이 쉽사리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 효율성 제고를 금리에 관한 양대기관의 입장은 나름대로 이론적 바탕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며 논쟁의 건설적인측면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운 때에는 체면치레나 상호불신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의견차이를 좁혀 일관성 있는 정책이 실시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또 금리인하를 위해 통화증가에만 매달리지 말고 금융기관의 효율성 제고에 의한 중개비 용의 감축,기업의 자금가수요(假需要) 축소를 위한 방안 등의 마련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盧成泰 〈한화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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