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에 피해입은 이라크인 英 정부에 손배소 제기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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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연합군에 의해 피해를 본 이라크인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영국 고등법원은 11일 이라크 주둔 영국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라크인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이라크 파병 연합군에 의해 피살된 이라크인들이 가해 병사의 소속 국가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군에게서 학대당해 사망.부상.정신적 충격 등 정신적.신체적.물질적 피해를 본 이라크인과 그 가족이 미국 법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커졌다.

로런스 콜린스 고등법원 판사는 이날 이라크 남부 바스라의 한 호텔 종업원으로 재직 중 지난해 9월 영국군에 의해 구금된 뒤 사망한 바하 무사(당시 28세) 등 13명의 이라크인 사망자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배소에 대한 심판에서 "법정에서 다룰 만한 사건"이라고 결정했다. 콜린스 판사는 "(손배소 제기) 허용 결정은 쟁점이 논의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인 필 시너 변호사는 "재판부의 결정은 이라크인들의 사망에 대해 영국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유족들의 주장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 결정은 늦어도 오는 7월 안에 완전 심리에 들어갈 전망이다. 재판부는 ▶유럽인권협정(ECHR)에서 규정한 인권법이 이번 소송에서 제기된 이라크인 사망사건에도 적용되는지▶영국 정부가 사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해야 하는지 등을 우선 심리하게 된다.

그러나 필립 세일 영국 정부 측 법정 대리인은 "영국군이 파견된 이라크 남부 지역은 영국의 사법권이 미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ECHR 내 인권법 조항을 이번 사안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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