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부당한 단체협약 파기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일 교원노조들에 단체협약 192개 조항 중 21개 조항에 대해 해지동의를 요청했다. 그 조항들로 인해 학교 자율화와 학생의 학습권 보장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교육청은 교원노조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단체협약 전체에 대해 해지를 통보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렇게 될 경우 노동조합법에 따라 6개월 후에는 이 단체협약 전체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단체협약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일방해지라는 강경책이 나왔을까? 서울시교육감과 전교조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에는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다. 단체협약에는 임금·후생복지 등 오로지 근로조건만을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 단체협약은 그 범위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업성취도 평가는 미리 합의된 몇몇 학교에서만 실시하되 다른 학교와 비교할 수도 없도록 명시해 놓았다.

전교조가 자신들은 물론 학생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못박아 놓은 셈이다. 그리고 담임배정·업무분장 등에 관해 인사자문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시범학교 지정은 교원 과반수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등 교육행정 전반에 대해 교원의 통제를 받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교육청이 고유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였으니 직무를 유기하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전교조가 사용하는 사무실·집기 및 비품 등을 제공하기로 한 약정도 서울교육청의 단체협약에 포함되어 있다. 연간 수백억원의 조합비 징수를 자랑하는 전교조에 사무실을 통째로 차려주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더욱이 서울시교육감의 월권도 있다. 사립학교 교원의 인사와 신분에 관한 사항과 사립학교의 정관 및 예·결산 공개에 관한 사항도 단체협약에 포함시켰다. 이는 사학법인의 고유 권한이므로 교육감이 교원노조와 교섭하고 합의해줄 사항이 아니다. 직권남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서울시교육청의 단체협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산·대구·인천·광주·경기 등 전국의 교육청이 체결한 단체협약 역시 거의 동일한 문제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전교조의 위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전국의 교육청들이 고유 권한인 교육행정권을 포기하면서 스스로 족쇄를 찼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교육부와 전국 16개 교육청이 2006년 10월 시민단체로부터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고발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는데, 그럴 만도 하다.

지역교육청들의 단체협약에 대한 갱신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단체협약이 2004년께 체결되어 그 유효기간이 1년이 경과된 이후에는 갱신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청들이 문제 있는 단체협약을 갱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교원노조들 사이에 공동전선이 형성되지 않아서 단체교섭이 개시될 수도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교조가 자유교원노조와 공동으로 교섭에 나서길 꺼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압도적인 조합원 수를 자랑하는 전교조로서는 반(反)전교조 성향을 뚜렷이 밝히면서 2006년에 출범한 신생 자유교조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교섭테이블에 앉고 싶지 않았을 터이다. 하긴, 교섭에 나선다 한들 지금의 환상적인 단체협약보다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터이니 전교조로서는 굳이 교섭에 나설 이유가 없었기도 하다.

단체협약이 갱신되기 전까지 종전의 협약에 의한다는 조항 덕분에 2004년에 체결된 단체협약이 아직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 교섭당사자 일방에 의한 해지통보가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 의문이 없다. 전교조는 교육청의 일방적인 해지가 위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전혀 법적인 근거가 없다. 반교육적인 단체협약에 5년 가까이 얽매였던 서울시교육청이 이제라도 해지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전국의 교육청들도 뒷짐만 지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이재교 인하대 교수·법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