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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생포 무장공비 이광수 기자회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9월 강릉 해안에 침투했다 생포된 북한군 李광수 상위(上尉)와 지난 13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한 곽경일 중사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군의 대남(對南)침투실태등을 증언했다.李상위는 『북으로 가고 ■ 은 생각은 없다.남조선에 침투한 죄인으로서 처분대로 하겠다』며 전향의사를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침투 경로는.
『지난달 14일 오전5시 부대가 있는 함남 낙원에서 정찰국장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했다.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까지는 별 문제 없었고 이 지점부터 수중 공기관과 잠망경을 내린채 해저 60~70 깊이로 침투했다.또 강릉에서 5마일 정 도 떨어진 거리에선 잠수함을 부상시켜 잠망경으로 위치를 확인하며 접근했다.15일엔 해안 3백~4백 거리에서 잠수함을 바닥에 가라앉혀 정찰조를 상륙시켰고 이후 물속에서 대기하다 17일 정찰조를 태우기 위해 들어가던중 좌초했다.』 -강릉 지역 고정간첩과 접선하려던 것인가.
『고정간첩이 있다는 생각은 안했다.』 -같은 잠수함이 세차례나 침투했다는데 사실인가.
『정찰활동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물어보지 않는다.다만 세번 정도 들어왔다는 얘기를 북에서 들은 적이 있다.』 -남한 민간인을 죽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나.
『나를 수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죽이라는 훈련을 받았다.실제로도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체포 당시에도 장전한 권총을 갖고 있었다.』 -침투 당시 국군의 경계태세는.
『구축함등 수상함은 국군 탐지기에 노출되겠지만 잠수함은 수중탐지기로도 잡기 힘들다.따라서 잠수함 침투때는 마음을 푹 놓고떠나는 분위기다.심지어 우리가 침투할 당시에도 국군 함정이 수중탐지기를 사용하는 것을 촬영한뒤 유유히 피해 오기도 했다.』-무장공비 잔당은 어디에 있을 것으로 보나.
『남아있는 정찰조 2명과 전투원 1명은 이미 북으로 잠입했을것으로 본다.이들은 군사분계선 통과 훈련을 수차례 받았고 또 행군능력.회피 기동능력도 대단히 높다.』 -집단 살해된채 발견된 11명은 왜 죽었다고 생각하나.
『북에서 교육받은 대로 해상처장이나 함장의 지시를 받고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침투조가 남한에서 자살했을 경우 북에 있는 가족들은 행복을 누리게 된다.또 북의 교신을 받고 자살했을 가능성도 있다.』 -체포 당시 위장자수라는 의혹이 있었는데. 『일부러 잡힌 것은 아니다.잠수함을 타면 높은 압력 때문에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한다.잠수함 좌초후 안내조장.조원과 함께 괘방산으로 도망가면서도 배가 고파 고생했다.더구나 동행했던 동료들은 「배고파서 못가겠다.이곳에서 싸우다 죽 자」고했다.나는 죽기보다 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그래서 이들과 몰래헤어진뒤 북을 향해 올라갔다.산 다섯개를 넘었는데 날씨가 덥고갈증도 심했다.뭐든지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산을 내려왔다집주인의 전화신고로 잡혔다.남한 집집 마다 전화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 집에서 절대로 시간을 끌지 않았을 것이다.』 -생포 당시 광어회가 먹고 싶다고 한 이유는.
『광어회는 고급 음식이다.나는 잠수기지에서 직접 광어를 잡기도 하고 먹을 기회가 많았다.생포된뒤 「뭘 먹고 싶으냐」고 묻기에 「못사는 남한에 광어회나 있겠느냐」는 심정에서 그처럼 대답했다.』 -신문도중 침투 인원수등과 관련,진술을 자주 바꾼 이유는. 『하루만 버티면 적어도 정찰조원들은 북으로 넘어갈 수있다고 생각했다.또 해상처장과 부처장은 언급하고 싶지 않아 뺐다.』 -전향 의사가 있나.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하겠다.』 -남북한을 비교하면.
『그동안 서울구경도 했고,한 평범한 가정집을 방문하기도 했다.그 가정집에서 13세된 남자 아이가 「북한에서는 굶는다는데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지만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남조선 인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남북을 비교한다면 사고와 생활수준등 모든 면에서 북한은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광수 가족관계> 65년1월 황해북도금천군계정리 출생.81년 계정고등중학교 졸업. 82년 해군 입대.91년8월부터 인민무력부 정찰국 3기지에서 근무.지난해 7월부터 22전대 2편대 1호 잠수함 조타수로 복무.협동농장원 출신인 아버지 이병호(59)와 어머니 박영순(59)사이의 6남매중 셋째.92년 결혼,두살난 아들.
최상연.이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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