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소.한국전력,原電설계 이관놓고 갈등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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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올해말로 예정된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자력발전 설계업무의 한국전력기술㈜ 이관 시한을 두달 남짓 앞두고 한전과 이관대상 인력간갈등이 팽팽하다.원전을 주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는 국가 에너지 정책상 또한 국산화율 95%로 개발도상국으로의 수출을 지향하고있는 현실에서 원전 설계인력의 부유(浮遊)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초리는 우려에 차있다.한편으로 한국형 원전 완성주역인 이들 설계인력을 보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와 한전의 태도 또한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 다.원전설계업무 이관 문제의 발단과 진행,이로 인한 문제점과 대책등을 양측의 주장과 함께 진단해 본다.
한국원자력연구소 L(정보계통분야.34)연구원.그의 주업무는 원전의 이상상태등을 점검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이다.물론 이관을 반대하는 이 연구소 2백84명의 직원(이관대상3백43명)가운데 한 사람이다.업무일정대로라면 그는 지금 최초의 한국형 경수로인 울진 3,4호기 건설현장에 파견돼 소프트웨어 점검에 눈코뜰새 없이 바쁠 참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현장에 없다.대신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한국형 경수로를 개발하는데 티끌만한 힘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으로 일해왔습니다.그러나 제 의사를 깡그리 무시한채 동료들과 함께 업무를 한전으로 이관하겠다는데 무슨 일할 의욕이 있겠습니까.』 그는 『원전계통설계기술의 개발은 기업의 엔지니어가 아닌 연구자에게 맡겨져야 한다』며 이관이 강행될 경우 전직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의 자회사격인 한국전력기술㈜에서 유체계통 설계책임자로 일하는 박흥규(朴興圭.42)씨.그는 『이관업무 인수측인 회사의 입장을 떠나 원자력연구소의 계통설계자들과 꼭 같이 일하고 싶다』는 뜻을 표했다.이른바 「2차계통설계」를 맡고있 는 입장에서원연측과 연계업무가 수없이 발생하는데 그간 각자 자기 스케줄에따라 일을 진행하다보니 차질이 많았다는 설명이다.그는 실무자 입장에서 볼때 계통설계 업무가 성격상 「연구개발」보다는 사업성이 훨씬 짙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로 서도 현재와 같은 대립으로『같이 일궈낸 한국형 경수로의 위상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두사람의 고민은 이번 이관사업을 둘러싼 「대치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요컨대 서로 자기가 계통설계를 맡아야 제대로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이번 문제가 국민들에게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대치국면을 풀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인가.서울대 강창순(姜昌淳.원자핵공학과)교수는 『설계와 연구개발,나아가 기술수출까지 전담하는 계통설계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제시했다.미국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이나 웨스팅하우스 같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경우 전력회사는 발전소 운전에 전념하고 설계회사는 연구개발은 물론 사업을 겸할 수 있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그는 고도의 기술과 함께 상업성을 갖는 원전 특성상 연구업무와 사업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좋다고 말했다.
한양대 전규동(全奎東.원자력공학과)교수는 개인의견임을 전제,『구조가 개편되든 안되든 유기적인 연구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자세로 타협점을찾을 경우 국가적 손실없이 원전기술의 자립을 이 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통설계를 어디서 맡아 하든 사업자와 연구개발자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경우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당국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과기처 고위당국자는 『한국형 경수로 개발에 원연 설계인력의 공을 인정한다』며 『그러나 한전이관이 국가적으로 이익인 만큼 이관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기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이런 상황에서 설계인 력의 이관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전은 부득이 외국으로부터 설계기술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어서 어렵게 이룩한 설계기술자립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있다.
윤재석.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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