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밤길 걸으며 되새긴 ‘생명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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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8시 수성구 대흥동 범안삼거리.

“사각∼ 사각∼.” 대구스타디움을 출발한 2500여 명의 시민들이 인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밤길을 걸었다. 모두 ‘생명 사랑’이라 적힌 흰색 T셔츠를 입었다. 하늘에는 나직히 음력 스무날의 달이 보이고 길 옆으로 풀 냄새가 상쾌하다. 손에는 작은 ‘소망의 빛’이 하나씩 들려 있다.

‘2008 생명사랑 밤길걷기’에 참가한 시민들이 인도를 따라 밤길을 걷고 있다. [대구 생명의전화 제공]


대구 생명의전화(1588-9191)가 펼친 ‘2008 생명사랑 밤길걷기’였다.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을 환기시키는 시민 참여 캠페인이다.

걷기는 이날 대구스타디움 주변을 도는 5㎞, 10㎞와 밤새도록 수성못을 거쳐 대봉교까지 왕복하는 25㎞ 등 3개 코스가 마련됐다. 그래서 행사 이름도 ‘해질녘서 동틀 때까지’로 붙여졌다. 행사를 주최한 대구 생명의전화 이재동(49·변호사) 대표이사는 “어두운 밤을 넘어 여명을 맞자는 뜻으로 밤길 코스를 만들었다”며 “가족과 친구 등이 서로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종착지 대구스타디움으로 향하는 마지막 언덕배기 지하철 대공원역에 이르자 간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이와 바나나가 인기였다.

지하철역 주변엔 참가자를 위해 의료팀은 물론 물리치료와 페이스페인팅·풍선아트·보석세척 등에 공연이 마련됐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은 줄을 서서 얼굴에 별 모양을 그렸다.

참가자들은 다시 기운을 차려 마지막 구간을 걸었다. 마침내 행사장 종착지. 행사 관계자들이 박수치고 환호하며 완보자를 맞았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겪은 아픔과 고민을 담은 ‘아픔의 돌’을 ‘소망의 빛’과 함께 종이봉투에 넣어 행사장 가운데 가지런히 세웠다. 아픔의 돌은 그 고통을 벗기 위해 수조에 담겨 버려진다.

또 임종 체험과 유언장을 써 보는 코너도 마련돼 생명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했다. 가족들과 같이 이날 5㎞를 걸은 이은경(45·수성구 만촌동)씨는 “행사가 뜻도 깊고 가을 밤 걷기가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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