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고독 … 절망 … 세기의 전환 그림으로 위안받은 뭉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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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자화상 ‘밤의 방랑자’(左)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자화상’. 두 작품 모두 1923∼24년에 그렸다. 같은 배경에서 같은 색조를 사용해 그린 그림이지만 ‘밤의 …’에서는 불길한 전조가 느껴지는 데 비해, ‘주머니에 …’에서는 차분한 자신감이 보인다. [을유문화사 제공]

에드바르 뭉크
수 프리도 지음, 윤세진 옮김
을유문화사, 628쪽, 2만5000원

  죽음과 절망, 고독 속에서의 몸부림….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8~1944)는 자신의 그림을 “일기장처럼 들어맞는다”고 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 쥔 ‘절규’부터 군중의 얼굴에 개성이 제거된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 소녀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그린 ‘사춘기’까지 그의 작품에는 외롭고도 불안정한 삶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있다.

뭉크는 탄생과 더불어 죽음 문턱에 갔으니 삶의 시작부터 아이러니컬했다. 노르웨이 한 시골 농가에서 허약한 몸으로 태어난 뭉크에게 부모는 혹시 죽으면 영혼만이라도 승천해 천사들을 만나라는 뜻에서 세례를 받게 했다. 그는 이후 다섯 살 때부터 서른 두 살이 되기까지 어머니와 누나·아버지·남동생의 죽음을 잇달아 겪으며 인생의 궤를 죽음과 같이 했다.

어린 뭉크는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산책길을 평생토록 간직했다. “엄마는 한걸음 뗄 때마다 멈춰 서서 숨을 쉬셨다. 문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눈부셨다. (…)엄마는 하늘색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리본이 깃발처럼 얼굴을 감쌌다. 우리는 슬로츠카트 거리를 따라 요새까지 걸어 내려가서 바다를 보았다.” 쓸쓸한 꿈결 같은 느낌이 배어나는 작품 ‘문 밖에서’를 완성한 것은 이로부터 25년 후였다.

뭉크에게 예술은 불안에 떨던 자신을 구원해주는 신앙 같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으로 마음 속 상처를 위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사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가 청년기를 보냈던 19세기말은 절망과 자살·마약·광기·허무주의가 가득했던 시기였다. 당시 크리스티아니아(오슬로)의 보헤미안들은 무의미한 인생에 반항하며 우울함을 달랬지만 뭉크는 이들과도 어울리지 않으며 아웃사이더 중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었다.

신과 다윈 사이에서 논란을 거듭하던 때 그에게 구원의 빛을 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니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광기를 두려워했다는 점에서 무척 닮아있었다. 형이상학적이고 잠재의식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영혼의 신비한 영역을 통찰한 도스토옙스키 역시 그의 정서적 축이었다.

뭉크는 세기의 전환기를 살면서 고독과 공포, 절망과 같은 감정을 형상화한 그림들로 20세기 현대 미술의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에 관한 비화 한 가지. ‘절규’는 이미 어린 아이도 알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언제나 그림을 자기 주변에 두어야 성이 찼던 뭉크는 오랫동안 여기저기 세워놓았던 작품에 계속 붓질을 가했다. 그리고 스스로 완성됐다고 느낄 때만 날짜를 기입했다. 어떤 경우에는 10년 내지 15년 전 날짜를 기입했다고 하니 그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 뭉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전기가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은이는 영국 출신으로 노르웨이를 오가며 활동한 미술가다. 철저한 고증과 풍부한 수식어로 용광로처럼 들끓던 세기말 속 뭉크를 생생하게 풀어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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