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요즘의 두가지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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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시인 김규동(金奎東)은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와 보수를 이렇게 말했다.『분단의 아픔을 해결,통일을 이끌어내는 것이 진보고 통일이 돼도 좋고 안돼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나혼자 살겠다는 생각을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진보문학계의 「어른」으로 대접받아온 그의 개념정리를 보며 우리의 통일정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보수.진보란 개념을 떠나 나 또한 통일문제를 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발판이 「분단은 아픔」이라는 인식에 동감한다.
그러나 분단의 상태가 장기화되고 양쪽 삶의 이질성이 심화되면서 분단을 아픔으로 느끼기보다 통일을 하나의 불편이나 귀찮음으로 여기는 생각이 슬금슬금 자라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조금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일해 이젠 어느정도살게 된 사람이 외면키 힘든 어려운 친척을 맞이해야 할 때의 느낌같은 것 말이다.이러한 느낌은 대부분의 경우 노골적으로 입밖에 내지는 않지만 어떤 계기가 마련됐을 때 다른 이름으로 포장돼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요즘 잠수함침투사건을 보면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북한의 도발과 그후 적반하장으로 벌이고 있는 그들의 도전은 두말할 나위없이 잘못된 것이다.또한 그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군이 대북강경책을 펴고 안보의 중요성을 최 우선으로 강조하고 나선 것도 당연한 대응이다.그러나 걱정은 이러한 대응이자칫하면 통일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느끼는」,나아가통일은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력에게 그들의 속셈을 사회적여론으로 고착시킬 빌미를 줄 우려 가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 상황에 대응해 안보태세를 다지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아픔의 근원인 분단상태를 해소키 위한 통일은 더욱 소중하며,이를 위한 준비는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내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무게중심이 온통 한 군데 로 쏠릴 때잠복된 불편의 심리가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 세력을 얻고,이것이앞으로 통일을 이루는데 가장 큰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걱정은 요즘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이어진다.근자의 경제지표 등을 감안할 때 정부가 경쟁력 10% 올리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선 뜻을 모르지는 않는다.그러나 그 접근방법이 작위적이며,비자발적이고,현상왜 곡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예컨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임금문제만 해도 그렇다.개별사업장의 임금을 정부가,또는 정부에 편승한 업계 의도대로 획정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고 그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과거 여러번「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임금정책을 편 적이 있 지만 그것이 성공한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그러한 물리적 압박이란 설령 단기적 억제효과는 있다하더라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용수철처럼 다시 튀어올라 더 큰 부담을 주게 마련이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는 고비용구조는 근로자들의 고임금이 주인(主因)이기보다 토지.금융.세제.각종 인허가 등 여러 부문에서의 규제적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러한 규제는 얼마든지 더 풀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규제의 완화나 폐지가 경쟁을경쟁답게 함으로써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킨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그럼에도 이러한 문제는 부차적인듯 호도하고,규제를 약간 풀어주는 것에는 엄청난 생색을 내면서 근로자에게 더 큰 책임을 지우려는 것은 본말전도다.경제발전의 목표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면 그 원천인 소득(임금)은 높아져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다른 부문의 고비용구조를 없애나가려는 노력이지 비자발적 임금동결 등의 몸짓이 아니다.그럼에도 임금을 묶어 경쟁력을 일시라도 유지해보겠다는 식의 퇴행적 사고방식이 득세하는 듯한 분위기,이것 이 또 걱정이다. (국제경제팀장) 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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