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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토종 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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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과일이 모여 맛난 와인이 됐다.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빛깔의 코리안 와인. 조용철 기자

경북 의성의 10월은 노랗고 빨갛다. 곳곳에 흩어진 과수원의 사과 덕에 빨간색은 더 진해진다. 길을 걷다 보면 바람에 실려 퍼지는 사과 향이 코를 자극하고 머리를 깨운다. 의성 사과는 높은 당도와 단단한 과육이 자랑이다. 상대적으로 비싸게 팔리는 이유다. 수확기인 요맘때, 농부들의 손놀림은 분주하고 조심스럽다. 모든 사과가 농부들의 바람처럼 크고 탐스러운 것은 아니다. 드문드문 못난이가 열리고, 흠집이 난 것들도 있다. 생긴 건 그래도 맛은 잘생긴 사과에 뒤지지 않는다. 이 못난 놈들이 모이면 일(?)을 낸다. 와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것이다.

 의성에 있는 한국애플리즈에서는 포도 대신 사과로 와인을 만든다. 사과 와인 제조법은 유난히 까다롭다. 포도는 껍질에 효모가 있어 자체 발효가 되지만 사과는 효모가 없어 따로 주입해야 한다.

애플 와인 개발 당시, 효모 대신 막걸리에 쓰이는 누룩을 넣어보기도 했다. 텁텁하고 무거웠다. 와인과 동떨어진 맛이었다. 결국 특별한 효모를 찾아 ‘한국형’ 사과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발효 과정을 거치는 와인은 당의 함량이 중요하다. 효모가 당을 알코올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당도가 낮을 때는 건조시켜 적정 당도까지 끌어올린다. 당도 자격을 갖추면 발효통으로 옮긴다. 몇 주가 지나면 알코올 도수 11도의 와인이 된다. 이때부터 와인의 참맛을 우려내는 숙성 단계에 들어간다.

대개 오크통에 넣는 포도 와인과 달리 사과 와인은 지하 숙성실의 대형 항아리 속에서 숙성한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3년까지 빈티지가 다양하다.

사과와인은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한국애플리즈는 지난해에 4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올해도 미국·호주·아르헨티나·일본·중국 등지로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처럼 의성의 한국애플리즈를 찾는 관광객도 많다. 사과 따기부터 와인 라벨을 붙이기까지, 사과와인 제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서다. 지난 한 해 동안 인도네시아·싱가포르·홍콩·말레이시아·대만 등에서 7800여 명의 외국인이 이곳을 들렀다. 방문한 내국인도 1만3700명에 이른다.

한국애플리즈의 한임섭 대표는 “사과와인을 생산한 것은 15년밖에 안 됐지만 외국의 포도와인 제조법을 접목해 질 좋은 사과와인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의성의 사과와인을 외국인들이 말하는 와인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와인의 개념은 포도로 만든 발효주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와인이 폭넓은 의미로 쓰인다. 포도를 비롯해 감·배·복분자·석류 같은 과일로 만든 술, 즉 과실주를 통틀어 이야기한다. 이 중에는 수입 와인처럼 100% 과실을 원료로 발효시킨 것도 있지만, 과실이나 과즙을 알코올에 담아 만든 술도 들어간다.

이런 과실주들이 수입 와인 붐에 힘입어 ‘별난 와인군’을 형성하며 와인 매니어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의성의 사과와인, 청도의 감와인처럼 명주(名酒) 반열에 오른 것도 있다.

이들의 가격은 한 병에 1만~3만원. 수입 와인에 비해 꽤 싼 편이다. 알코올 도수는 11~13도. 희석식 소주(20도 내외)의 절반 수준이다. 불고기·삼겹살 등 우리 음식과 맞는 게 매력이다.

<의성> 글=백혜선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우리 농산물로 만든 국산 와인

◆사과 와인

10월부터 12월까지 수확한 의성 부사가 주재료다. 투명한 오렌지 빛이다. 은은한 사과 향에 달콤한 향이 더해졌다. 달콤하고 시큼해 식전주로도 제격이다. 뒷맛이 부드럽고 깨끗해 여성들이 좋아할 법하다. 11도. 1만5000원. 054-834-7800.

◆석류 와인

사과와 석류를 8대 2 비율로 섞었다. 사과의 달콤한 맛이 석류의 떫은맛을 줄여 준다. 석류 특유의 맑고 붉은 색이 매력이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함유량이 많다. 12도. 1만8000원. 054-834-7800.

◆감 와인

경북 청도군의 특산물 반시(납작감)로 빚었다. 온도(15℃ 내외)와 습도(70∼80%)가 일정한 와인 터널에서 숙성한다. 와인용 감은 당도가 22~26브릭스(brix·당의 농도 단위)인 것을 쓴단다. 달콤하면서 떫은맛이 강하다. 향은 약한 편. 12도. 레귤러 1만8000원, 스페셜 2만5000원. 054-371-1100.

◆다래 와인

다래 열매를 아이스와인 방식으로 제조했다. 매실 음료처럼 노란빛을 띠며 투명도가 높은 것이 특징. 다래의 상큼하고 달달한 맛이 화이트 와인처럼 변신했다. 산에서 딴 야생 다래를 재료로 하다 보니 생산량은 연간 1만 병에 지나지 않는다. 13.5도, 레귤러 1만5000원. 프리미엄 2만7500원. 033-344-7788.

◆배 와인

강원도 치악산 일대에서 재배한 신고 배로 빚었다. 배 즙을 짜낸 듯 반투명하면서 옅은 흰색이 감돈다. 배 특유의 단맛이나 향은 약한 편이다. 가볍고 깔끔한 맛이 닭백숙이나 생선회 등 담백한 요리와 잘 어울릴 듯. 13.5도. 2만1000원. 033-334-7788.

◆복분자 와인

횡성 태기산 일대의 당도 높은 복분자를 골라 프랑스 와인처럼 만들었다. 발효한 뒤 장기간 숙성하고 네 차례의 여과 과정을 거쳐 출고한단다. 복분자 특유의 달짝지근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12도. 1만5000원, 2만7500원. 033-344-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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