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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기의 한복판에서 미래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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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요 선진국들의 강도 높은 공조로 세계 금융위기의 급한 불이 잡혀가는 조짐이다. 유럽 각국은 최대 2조3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도 1000억 달러를 동원해 주요 은행들의 지분 인수를 검토 중이다. 미·유럽의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무제한의 달러 공급도 약속했다. 꽉 막힌 돈 흐름을 뚫기 위한 긴급 처방이다. 일단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불안심리는 누그러지고, 금융시장은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세계 주요 증시는 폭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1200원 부근으로 내려왔다.

물론 아직 긴장을 풀 때는 아니다. 세계 금융위기가 빠른 속도로 소비·투자·부동산 등 실물경제에 전염되고 있다. 구제금융이 한계에 부딪힌다면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한번 쑥대밭이 될 수 있다. 설사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다 해도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거품 붕괴에 따른 신용 축소와 채무 재조정은 피할 수 없다. 상당 기간 소비와 투자는 줄어들고, 실업은 늘어날 게 뻔하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제부터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경제를 추슬러야 한다고 본다. 우선 취약성을 드러낸 외환시장의 체력을 보강하고 외환보유액을 다시 쌓아야 한다. 금리를 함부로 움직여서도 안 된다. 500조원이 넘는 가계대출과 부동산 거품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이미 저금리의 거품을 향유해온 잔치는 끝났다. ‘부채도 자산’이란 허황된 믿음도 접어야 한다. 합리적인 금리정책을 통해 빚더미에 오른 가계의 채무 재조정을 유도하고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금융위기를 핑계로 각종 개혁이 후퇴하는 것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다행히 금융위원회는 금산분리를 완화했다. 하지만 정부가 더 이상의 규제완화를 머뭇거리는 기색이 뚜렷하다. 공기업 선진화도 주춤거리고 있다. 물론 금융시장 혼란으로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규제를 없애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역발상이 지금만큼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도 없다.

길게 보면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삼성과 GE의 최근 움직임은 눈여겨볼 만하다. 삼성은 전 계열사에 내년에는 인수합병(M&A)을 핵심 경영전략으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이번 위기를 디딤돌 삼아 향후 시장판도를 주도하겠다는 포석이다. GE도 지난주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120억 달러 증자를 감행했다. 물론 주가는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실탄을 마련해서 미래의 성장동력원을 손에 넣겠다는 고차원적인 경영판단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경제위기도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때쯤 세계 자본주의는 우리가 익숙하게 목도해온 풍경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위기를 맞아 움츠러들기만 하면 앞날은 초라해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경제위기를 넘어 미래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때다. 그런 큰 그림이 있어야 눈앞의 위기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전 세계에 대해 미래를 새로 모색하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슈] 미국발 금융 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