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연극 "날 보러 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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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앙코르공연된 극단 연우무대의 『날 보러 와요』(김광림 작.연출)는 새로운 배우들의 가세로 공연의면모를 다듬었다.마치 연기대결을 벌이듯 저마다 다른 성격을 자유롭고 탄탄하게 배우들은 연기했다.특히 국악인 김용만(김반장 역)의 정확한 대사전달과 연기톤,신인배우 이지현(미스김 역)의진지하고 순박한 연기는 맡은 배역과 잘 어우러졌다.
96년 상반기 우수작으로 평가받은 이 작품은 미궁에 빠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다.우선 서울대출신 시인,무술 고단자,토박이 형사,사명감에 불타는 수사반장등 각기 출신과 성격이전혀 다른 인물들이 벌이는 수사양태가 관객의 주 목을 끈다.이들은 취조의 주도권을 교대로 잡으면서 갈등.충돌하고 수사가 길어짐에 따라 증폭되는 수사본부나 언론.시민단체등 외부의 압력에질식할 듯한 중압감을 받게 된다.이런 스트레스는 결국 수사반원들의 정신분열.심장질환.폭력행사.사 표등으로 이어져 이들의 신체와 정신을 낱낱이 파괴한다.무대밖의 힘이 조금씩 무대공간인 수사반으로 밀려들어와 형사들의 내면을 붕괴시키는 것이다.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이 겪는 심리변화가 예리하게 극화.연기돼 흥미와 긴장을 동시에 관객에 게 전달하는 힘이 되고 있다.
한편 용의자 3명과 환상속의 진범역등 1인4역을 맡은 유태호의 연기변화는 폭소와 동시에 공포를 유발하고 형사들과의 심리대결을 긴장으로 잘 묶어 둔다.한 배우의 용의자역 다역(多役)연기는 설정 자체가 진범이 현실 밖에 존재하는 것으 로 보이게 한다.결국 혼신의 힘을 다하고도 진실(=진범 체포)은 미궁의 나락으로 처박히고 수사반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이들의 모습은 풀리지 않는 답답함으로 관객의 가슴에 앙금으로 남는다.이극이 단순한 추리극의 한계를 벗어나 관객의 공감대를 얻어 낸 또 하나의 이유는 순박한 다방레지 미스 김과 김형사간의 순수한사랑을 보석처럼 영롱하게 그려 낸데 있다.이들을 맺어주는 매개는 한편의 시다.이것은 짓눌리는 극현실의 숨통 구실을 해준다.
현실성 없어 보이는 둘 의 만남이 관객으로 하여금 소박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며 안타까움과 풋풋한 느낌을 같이 줌으로써 극을건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일부 대사를 삭제.수정해 극 종반의논리 비약을 막아 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나 세번째 용의자가 진범이 아님을 밝히는 과정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그러나 전체적으로 극작과 연기가 훌륭한 조화를 이룬 반가운 공연이었다.
최준호 연극평론가.연극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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