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퇴직자 81% 취업 신분 세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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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금융감독원(금감원)을 퇴직해 사기업에 재취업한 2급 이상 간부 가운데 80% 이상이 퇴직하기 전 부서를 옮겨 ‘신분 세탁’을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4급 이상 공무원과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은 직무와 연관된 사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공직자윤리법의 규정을 피하기 위해 퇴직에 즈음해 부서를 슬쩍 바꾼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무위 이사철(한나라당) 의원은 “2007년 이후 퇴직해 재취업한 2급 이상 간부 32명 가운데 26명(81.2%)이 퇴직 전 업무상 금융권과 직접 관련 없는 부서에서 일하다 퇴직한 뒤 금융권에 재취업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퇴직 당시 부서로는 인력개발실이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소비자보호센터(6명)·임원실(4명)·검사지원국(3명)·총무국(2명)이 뒤를 이었다. 또 퇴직자 32명 가운데 10명은 마지막 부서에서 근무한 기간이 3개월이 채 안 됐다.

실제 보험검사1국에서 근무하던 손모(1급)씨는 인력개발실에서 2개월 근무한 뒤 지난해 5월 퇴직해 같은 달 A화재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증권검사2국과 자본시장조사1국에서 3년 가까이 근무한 이모(2급)씨도 퇴직 전 2개월간 검사지원국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6월 B증권사 감사가 됐다.

이 의원은 “공직자윤리법은 ‘3년 이내의 직무와 연관된 사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고 돼 있지만 현재 공직자윤리위는 퇴직 당시 근무부서가 금융기관과 관계없으면 별 제지 없이 취업을 승인해주고 있다”며 “인력개발실이 특히 근무부서 세탁을 위해 악용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내외의 연수와 강의를 주로 담당한다는 인력개발실은 이들 직원에게 ‘전담교수’ 명칭을 부여하고 해당 직급에 준하는 보수를 지급한다. 2005년 12월 8명이었던 인력개발실의 전담교수는 지난해 14명에서 올 9월 현재 18명으로 늘었다. 교수 1인당 강의횟수는 2006년 10.8회에서 지난해 5.4회, 올해 현재 4회다.

또 2006년 이후 전담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한 24명 가운데 21명이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가운데 14명은 인력개발실 근무 기간이 1년 미만이고 11명은 채 6개월이 안 됐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조직의 선순환을 위해 만 54세가 되면 보임해제하고 다른 부서로 발령 낸다. 미리 사기업에 취업할 것을 염두에 뒀다는 것은 악의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그러나 “취업 제한 대상을 보다 정밀하게 감시해 금감원 임직원 출신이 로비 창구로 쓰이는 관행을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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