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군사회담 합의 이번에는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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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제 평양에서 끝난 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군사당국자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했다. 이 회담을 열자는 남측 요구에 한.미군사훈련 중지를 내세우며 거부로 일관하던 북측이 결렬 직전 한발 물러나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남북한이 마지막 순간까지 절충을 벌여 끝내 합의점을 끌어낸 것은 바람직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이 보여준 전반적인 협상자세는 실망스러웠다.

원래 군사당국자회담은 지난 2월의 장관급회담에서 양측이 합의했던 사안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를 진작 이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이번에 불쑥 한.미군사훈련 중지와 연계시킨 것이다. 남북관계가 제대로 진전되려면 양측 간 합의사항은 반드시 이행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다음 합의사항에 대해서도 신뢰가 생기고, 그 결과 양측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과가 돌아가는 법이다.

이제 북한은 군사당국자회담에 다시 한번 합의한 이상 지난번처럼 지연 작전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우리가 이 회담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 회담을 제의한 것은 군사적 긴장상태가 완화돼야 한반도 평화가 보다 공고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북한이 원하는 남북경협도 긴장이 완화돼야 보다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북한이 이 회담을 회피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군사당국자 회담이 필요한 것은 서해교전 같은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우발적 충돌이 또 발생한다면 남북경협의 대폭적인 위축은 물론 남북관계가 크게 후퇴할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북한은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적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득이 된다는 점을 깨닫고 군사회담에 나올 것을 촉구한다. 동시에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려는 남측 국민의 의지는 단호하다는 점을 명심하고 NLL을 분쟁화하려는 의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미리 지적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