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몰락하는 '神話 이명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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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정치는 신화를 삼켜버리는 늪지대인가.한 분야에서 대가(大家)를 이뤄 명망의 고공(高空)을 비행하던 인물도 정치라는 울타리만 넘으면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기억하고 있다.
박태준(朴泰俊)전민자당최고위원은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철의 사나이였다.그런데 그는 정치권력이란 철강석을 녹이는데는 무척 어설퍼 탈세와 부정축재란 오명을 쓰고 불명예퇴장을 당해야 했다.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은 신화급의 성장사를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기업인이었다.그는 정치의 마성(魔性)에 끌려 절제를 잃었다.그는 92년 대선때 금력을 불러들임으로써 세인(世人)의 신망을 떠나보내야 했다.
많은 일반인들에게 「김동길(金東吉)」은 지성의 이름이었다.그는 바른 말을 했고 그로 인해 쌓은 명성으로 쉽게 금배지를 달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는 작은 당의 권력소용돌이에서파산하고 말았다.
서울대 수재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세계 일류대 공학박사였던 모(某)씨는 신정치1번지에서 쟁반을 돌리다 낙선했다.그는 재기했으나 다시 금전스캔들에 휘말리고 말았다.
지금 한국사회는 다시 한번 신화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다.23세 이사,35세 사장,46세 회장….이명박(李明博)의원은 한국의 개발연대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최대의 「샐러리맨 신화」였다.그는 서울종로에서 당선돼 정치신화도 개척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도덕성의 파문으로 벼랑끝에 서있는 것이다.물론 그의 말대로아직 진실의 얼굴은 남아있다.폭로자 김유찬(金裕璨)씨의 도피가그와는 무관할 수도 있다.또 그가 수억원의 선거자금을 썼다는 金씨의 폭로도 사실이 아닐는지 모 른다.그는 24일 기자회견에서 다시한번 『도피에는 무죄』를 외쳤다.
하지만 그의 언행을 들춰보면 많은 면에서 신화의 주인공답지 않다.우선 그는 며칠동안 잠적했다가 뒤늦게 나타났다.정말 『양심을 걸고』(그의 표현) 무죄라면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는 『당에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사실 당은결과적으로 그의 말을 믿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나중에 사과해야했다.李의원은 자신의 거취를 검찰수사후로 늦췄다.그동안 당의 상처는 깊어갈 것이다.
李의원은 더군다나 도피에 대해선 강변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인 선거비용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는 『신화는 없다』는 자서전에서 『강한 자는 시련앞에서 우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적고 있다.부서져가는 신화의 조각을 나중에라도 다시 맞추려면 그는 이 시점에서 이 말에 부합되는 처신을 해야할 것이다.
김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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