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영어 몰입 교육에 앞서 국어 교육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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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각국 선수단은 기존의 알파벳 순서가 아니라 한자 획수 순서로 입장해야 했다. 개막식 공연 때는 무용수들이 군무를 추며 거대한 ‘화(和)’자를 만드는 쇼를 펼쳤다. 전 세계에 한자의 위상을 과시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과연 한글의 위상은 어떤가. 부끄럽지만 우리 국민의 홀대와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영어 맞춤법을 틀리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우리말과 글을 올바로 쓰는 일엔 도통 열의가 없다. 인터넷 댓글과 휴대전화 문자에서 비롯된 ‘걍(그냥)’ ‘잼있다(재밌다)’ 같은 마구잡이 표현들이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삼청동자(삼척동자)’ ‘무뇌한(문외한)’처럼 한자어를 발음만 비슷하게 잘못 적는 일도 부지기수다. 영어나 중국어에 쏟는 열정의 반의반이라도 국어 공부에 쏟았다면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터다.

오늘은 562돌 한글날이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 정보기술(IT) 시대에 우수성이 더욱 돋보이는 문자인 한글이 태어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이 귀한 문화유산을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나 일삼고 있으니 여간 송구스럽지 않다. 이제라도 우리말과 글을 갈고 닦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영어 몰입 교육에 앞서 각급 학교에서 국어 교육부터 내실 있게 진행해야 한다.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한자 교육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국가 차원에서 잊혀져 가는 어휘의 수집과 보존에도 나설 필요가 있다. 한국어 표준대사전이 고작 3권 분량인데 일본은 수십 권이나 된다고 한다.

이와 함께 한글의 세계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국은 곳곳에 ‘공자 아카데미’를 세워 중국어와 한자를 전파하는 데 열심이다. 우리도 대표적 문화 상품인 한글을 널리 확산시킴으로써 세계 각국에 지한파·친한파 젊은이들을 키워낼 수 있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처음 개설한 해외 한국어 강좌 ‘세종학당’이나 성균관대가 중국·몽골 등에서 여는 ‘한글 백일장’이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