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외환보유액, 다른 나라에 빚 갚을 때나 환율 급등 때 쓰는 ‘비상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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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요즘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하는 논란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외환보유액’이란 단어도 신문에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눈치 빠른 틴틴 친구는 신문을 읽으면서 외환보유액이란 게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다른 나라 돈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챘을 거예요. 오늘은 외환보유액이 정확히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하기에 부족하면 큰일난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건지 알아볼까요.

외환보유액이란 우리나라가 비상시에 쓰려고 모아놓은 외화 재산이에요. 일종의 비상금인 셈이죠. 기업이나 일반 은행 등이 갖고 있는 외화는 외환보유액으로 치지 않아요. 나라가 급하다고 해서 기업이나 일반 은행에 “가진 외화 내놔라”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외환보유액이란 정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갖고 있는 외화 재산만을 가리킵니다.

이 비상금은 언제 쓰는 걸까요. 몇 가지가 있어요. 우선 요즘처럼 환율이 급등할 때 필요해요. 우리나라처럼 물건을 많이 수입해 쓰는 나라는 환율이 급등하면 물가가 크게 오릅니다.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일 때 10달러짜리를 수입하면 1만원이지만, 1250원일 때는 1만2500원이 되니까요. 이렇게 물가가 급히 오르면 모두들 살기가 어려워지죠. 그래서 환율이 급히 오르면 정부는 갖고 있던 달러(외환)를 내다 팔아 환율을 안정시킵니다. 경제에는 대체로 ‘흔하면 싸다’는 법칙이 있어서, 이렇게 정부가 달러를 내다 팔면 달러가 보다 흔해지면서 환율이 내려가게 돼 있어요.

외환보유액은 다른 나라에 빚진 돈을 갚을 때도 필요해요. 다른 나라들은 돈을 돌려받을 때 세계 어디에서든 쓰이는 달러나 유로 같은 것으로 받기를 원해요.

사실 외환보유액이 풍족하면 꿔준 나라나 금융회사들이 갚으라는 소리도 잘 안 합니다. 또 서로 돈을 꿔주려고도 하죠. 외환보유액을 보고서 “저렇게 돈이 많으니 떼일 염려가 없겠다”고 생각해 돈을 빌려주려 하는 겁니다. 반대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돈을 빌리기 힘들겠죠. 게다가 빌린 돈을 빨리 갚으라고 독촉받기 십상이에요.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어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달러를 빌려 급한 불은 껐지만, 대신 IMF 요구대로 부실 금융회사와 기업들을 정리하느라 홍역을 치렀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약 2400억 달러(약 300조원) 정도의 외환을 갖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직전(89억 달러)의 30배에 가깝죠. 어떻게 마련했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수출을 많이 해 무역에서 돈을 많이 벌었고, 외국 회사들이 한국에 지점을 만들면서 투자를 했고, 또 한국 주식도 많이 샀어요.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뭘까요. 밖에서 달러 같은 외화가 들어온다는 거예요. 수출을 하면 돈을 받지 않겠어요. 또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때도 자기 나라가 가진 외환을 갖고 들어와서는 원화로 바꿔야 해요. 이렇게 되면 나라 안에 외화가 넘치고, ‘흔하면 싸다’는 법칙 때문에 환율이 떨어집니다. 환율은 너무 올라도 좋지 않지만, 너무 떨어져도 문제예요. 당장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환율이 떨어지면 정부나 중앙은행은 환율을 안정시키려고 외화를 사들입니다. 이게 쌓여 외환보유액이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2400억 달러라는 외환보유액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고 있을까요. 물론 금고에 넣어두지는 않지요. 대신 적절히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곳에 ‘굴립니다’. 그래야 돈을 불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윳돈 중에서도 급할 때에 대비한 비상금은 대부분 찾아쓰기 쉬운 예금에 넣어두게 마련입니다. 나라 비상금인 외환보유액도 마찬가지예요. 실제로는 대부분 선진국에 꿔주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미국 같은 나라의 ‘국채’를 사는 거죠. 미국의 국채란 ‘이것을 가진 사람은 액면에 표시된 금액만큼을 미국에 빌려줬으며, 그 이자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증서예요. 이런 국채는 서로 사고 팔기도 합니다. 비상시에 바로 팔아 외화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거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다른 나라가 외환보유액의 투자 대상으로 미국 국채를 선호합니다. 부도 날 염려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외환보유액을 미국 국채에만 쏟아붓는 것은 아니에요. 그랬다가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큰 손해를 보게 되니까요. 그래서 외환보유액은 달러뿐 아니라 유로나 엔화로 바로 바꿀 수 있는 재산에도 투자를 해놓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는데, 달러 쪽에 얼마, 유로에 얼마를 넣어놓았는지(외환 포트폴리오)는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여섯째로 많은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어요. 그런 우리나라가 어떨 때는 외환보유액 중에 달러 비중을 80%로 했다가, 어떤 때는 70%로 줄였다가 하는 것을 낱낱이 공개하면, 시장에 ‘달러가 대거 풀린다’는 정보가 돌면서 달러 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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