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밥상머리 교육’ 상식부터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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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습관적으로 해 온 말이나 행동 중에는 자녀의 건전한 식생활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 많다. 예로 채소를 먹이려고 상이나 벌을 내리는 것은 역효과다. [중앙포토]

 

주부 정승아(37·서울 서초구)씨는 요즘 7살 난 아들 승환군의 식사 문제로 신경이 곤두선다. 아이의 체중이 40㎏에 근접해 육류나 패스트푸드 대신 채소 위주로 먹이고 싶은데 시금치·가지를 주면 바로 뱉는다. 부모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 타임스엔 ‘자녀의 식생활과 관련된 부모의 여섯 가지 잘못’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해 온 말이나 행동이 자녀의 건강한 식생활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우리 현실에 맞게 풀어보자.

1 “부엌에 가까이 가선 안 돼”= 동서양을 불문하고 부모는 자녀가 주방에 출입하는 것을 꺼린다. 칼, 뜨거운 물, 가스레인지 등 아이에게 위험한 물건이 많아서다. 특히 남아는 “남자가 무슨…” 운운하며 부엌에서 격리시키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자녀의 식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유치원생부터 초등 6년생 600명을 조사한 결과 아이들을 조리 과정에 참여시키고, 영양교육을 실시하자 전보다 채소와 전곡(현미·통밀 등)을 훨씬 많이 먹었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윤지현 교수는 “자녀와 주방에서 계란 풀기, 두부 썰기, 양파 까기, 애호박 썰기를 함께 하면 해당 식품에 대해 친근감을 표시한다”며 “칼이 꺼려지면 묵 써는 칼을 쓰면 된다”고 조언했다. 아이가 조리한 음식은 빨리 먹고 싶어하기까지 한다.

2 “딱 한 입만 먹어봐”= 일시적으로 통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역풍을 맞는다. 국민대 식품영양학과 정상진 교수는 “한 입 먹으면 TV 시청 허용, 스티커 등 상을 내리는 것은 끝까지 먹지 않았을 때 벌을 주는 것만큼이나 나쁘다”며 “어떤 음식을 먹으라고 애걸 또는 강요하면 해당 음식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는다”고 지적했다. 이보다는 아무 말 없이 식탁 위에 자주 올려 노출 횟수를 늘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때 식탁 위의 음식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며 자녀를 야단쳐선 안 된다. 아이가 음식 맛을 본다고 해서 바로 칭찬하는 것도 삼간다. 부모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킨다.

3 “정크푸드는 눈에 안 띄는 곳에 숨긴다”=쿠키·초콜릿·청량음료 등 자녀가 탐닉하기 쉬운 식품을 가급적 감추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아이는 감춰 둔 식품을 잘 찾아내며, 숨긴 식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나타낸다. 같은 쿠키라도 자신이 찾아낸 것은 부모가 제공한 것보다 세 배 이상 많이 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숨기고 싶은 식품이라면 처음부터 집 안에 들이지 말아야 한다. 건강에 유익한 식품을 자녀의 눈에 띄는 곳에 놓는 것이 최선이다.

4 “아이에게 다이어트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 하는 경향이 강하다. 부모가 즐겨 먹는 채소·과일을 자녀도 선호한다. 부모가 싫어하는 음식에 대해선 자녀도 거부한다. 자녀에게 자신의 다이어트 노력을 보여주려는 부모도 있지만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상일 교수는 “만약 부모의 다이어트가 원하는 만큼 체중 감량을 이룬 ‘성공작’이라면 이를 본뜬 자녀는 한참 자랄 나이에 열량·영양 부족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5 “생채소가 최고지”= 채소를 생으로나 간단히 쪄 먹이려는 부모가 많다. 식용유를 사용하면 열량이 급증할까 우려해서다. 이런 ‘맛 없는’ 채소는 아이에게 인기가 없을 게 뻔하다. 인하대 식품영양학과 이수경 교수는 “채소에 식용유·버터·드레싱·치즈·흑설탕·소금 등을 넣어 입맛에 잘 맞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며 “열량 섭취량은 조금 늘겠지만 채소에 든 각종 영양소·생리활성 물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는 장사”라고 평가했다.

6 “서너 번 시도했으면 충분하지”= 채소 먹이기를 몇 번 시도했는데도 아이가 계속 거부하면 대부분 체념한다. 하지만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 채소를 식탁 위에 적어도 15번 이상 올리면서 몇 개월 지내 본다. 아이가 한 가지 채소를 먹기 시작하면 이를 ‘다리’(food bridge)로 다른 채소를 맛보게 한다. 가령 호박 파이를 먹기 시작했다면 이와 비슷한 으깬 고구마, 으깬 당근 등을 먹인다. 시금치에 입맛을 붙였다면 이를 ‘가교’ 삼아 아욱·브로콜리 등을 제공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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