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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문예지에 실린 詩人 3인 新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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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진 김초혜,중견 김명인,신예 박라연 시인이 그들의 시력(詩歷)에 맞춤한 신작시들을 최근 선보인 계간문예지 가을호들에 발표했다.『문예중앙』은 김명인.박라연씨의 시 각 10편을 「소시집」형태로 묶었고 『한국문학』은 김초혜씨의 시 5 편을 「신작시 특집」으로 실었다.소시집이나 신작시 특집은 그 계절의 주목받는 시인을 선정,일정량의 신작시를 한꺼번에 발표해 독자와 문단의 평가를 받게하는 만큼 그에 상당하는 알찬 작품들이 실린다. 『시간은/우리를 실어다/망각의 강에 빠뜨린다/죽음의 고요까지도/하늘 끝으로 밀어버린다/누가/인생의 그리움을 깨워/그 속임수로/우리를 위로했는가/내일이라 하는/오늘을 딛고 보니/낡은불면만/줄기차게 따라와/生을 무너뜨리고/삶의 이력 은/위로는커녕/멍에가 되어/나를 앓게 한다』(『독백』전문).
6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시력 30여년에 오십 고개를 넘어 60으로 가는 나이인데도 김초혜씨의 그러한 삶의 이력은 위로는커녕 여태 「그리움」으로 불면의 밤을 앓게 한다.『사랑굿』을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올린 김씨에게 그 그 리움은 우주만상으로 확산,스며드는 사랑을 낳는다.그래서 김씨는 노래한다.
『아주 보잘것 없는/작은 손짓에서도/희미하게 우주의 빛을/모을수도 있지 않느냐』고(『시간을 마주보며』중).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삶과 사회의 숨은 의미를 단아한 구조와 명징한 언어로 떠올리고 있는 김명인씨도 한층 더원숙한 시세계를 이번 소시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길 떠난 이래로 석 삼 년 만에 비로소/외진 바닷가 한 집에 들다/샛길을 뉘어놓고 민박집 앞 바다를 종일토록 바라본다/썰물이 밀고 나간 물골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한나절 내내 낮선 지번을 더듬던/부리가 까만 몇마리 물떼새/다시 보면 어느새 개펄 저편으로건너가고 없다』(『부활』중).
바다가 풍경을 쓸쓸하게 보여만 주고 있고 시인의 육성은 드러나지 않는다.김씨는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삶의 쓸쓸한 의미를 이렇게 단정하게 그려내고 있다.그 풍경을 들여다 보노라면 비록쓸쓸하지만 우리네 삶은 그만큼 일상에서 함부로 할 수 없는 깊이로 다가온다.
『금산사 미륵보전 커다란 입상 앞에 서니/작은 가슴 꽃봉오리터지듯 부풀어온다/초발심이 더욱 향기로운 듯 스스로 눈을 감고/일송 스님 독경소리에 속세를 맡기니/흩어져 싸우던 영혼들 갓난아기처럼/보송보송한 얼굴로 웃는다/무엇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 놓쳐버리고/내가 누군지조차 놓아버리고 용서할 수 있는 현실조차 없는 山』.
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박라연씨는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생밤 까주는 사람』등의 시집을 펴내며 유려한 율격과 친근한 시어들로 나와 세상에 대한 상처마저도 따뜻하게 감싸오고 있다.이번의 소시집에서는 위시 『모악산』 일부에서 드러나듯 이제 중견을 향한 시점에서 내면의 정신적 깊이를 다잡아가고 있는 듯하다.그럼에도 박씨의 시들은 한없이 밝고,가볍고,아름답게 울리며 독자를 파고든다.이들의 시는 독자들을 시의 계절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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