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밖에 비친 우리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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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엊그제 미국 주요 일간지들은 시카고 전당대회 참석차 기차에 오른 클린턴 일가(一家)의 사진을 1면 컬러로 크게 처리했다.
같은 기사 곁에 수의(囚衣)를 입은 한국 전직대통령들의 흑백사진과 선고소식이 크게 다뤄졌다.
두 기사를 함께 접하는 마음이 착잡하다.역사청산 노력의 불가피한 대목이지만 외국에 전해지는 우리 모습의 단편인 것은 부인할 길이 없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지는 다음날 사설을 통해 한국의 현상황을 정리했다.너그럽게 보자면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글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을 보는 필자들의 시각에 놀라게된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간여된」역사적 재판,시위학생들에 대한 「과잉진압」,대통령이 야당의원시절 반대했던 국가보안법에 따른 시위자 처벌에서부터 노동자 들의 조합결성자유 보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등도 지적됐다.여론조사에 따른 한국민 대다수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임에 분명하다.
지난주 현지 TV 시사토론에 참석했을 때도 같은 경험을 했다.제임스 릴리 전주한대사,찰스 카트먼 미국무부 동아.태부차관보와 대사관 정무공사가 함께 참여한 자리였다.한국 정세가 주제였고 한총련 사태와 미국의 대북정책등이 화제로 올랐 다.대화중 이어지는 질문에 깔린 사회자의 시각에 또 한차례 놀랐다.학생시위 진압에 한국정부가 제법(?)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는 다분히냉소적(冷笑的)인 것이었다.
같은날 미국의 소리(VOA)방송 인터뷰에서 제기된 질문도 유사했다.이들의 한국 인식이 곤혹스러우면서도 질문에 떳떳이 응할수 있었던 까닭은 학생들의 폭력시위 진압이 대북정책이나 정권안보 차원에서 다뤄진다는 지적을 반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문민정부가 주는 힘이다.
그러나 한국에 관심있는 많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이같은 사실에쉽사리 공감하지 못한다.이들은 한국학생들의 구호에서 통일문제가튀어나오는 한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또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학생들 입에서 불거져나 올 때면 으레 미군이 불명예스럽게 쫓겨날까 우려가 앞서는 이들이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재판,학생시위등 엄청난 일들을 한국 안에서보고 느끼는 것과 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에는 편차(偏差)가 있게 마련이다.이 차이를 메우는 일은 과연 누구의 몫인가. 우리 문제를 놓고 미국인들과 대화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남는 것은 결국 「모두가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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