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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위기를 해부한다 <中> 패자와 승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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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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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돈은 나라가 망할 때나 새로 설 때 버는 법이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렛 버틀러는 그런 장삿속으로 돈을 벌었다. 지금 금융제국 월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리먼브러더스·메릴린치·베어스턴스 등이 간판을 내리자마자 돈 되는 자산이나 사업 부문을 채가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온통 폭삭 내려앉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실속을 챙기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미국에선 메릴린치를 삼킨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JP모건 체이스를 ‘월가의 새로운 왕’으로 표현한다. 이들은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을 결합한 새로운 은행(CIB)으로 변신하며 월가를 호령할 태세다. 일본의 금융회사들도 기회를 잡았다. 이들은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월가 쇼핑’에 나서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의 주요 배역들을 살펴본다.

 월가의 금융위기에는 고정 주역이 따로 없다. 시장이 누구 탓에 휘청거리느냐에 따라 그날그날의 배역이 달라진다. 어제는 베어스턴스, 오늘은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그리고 내일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계획에도 불구하고 월가는 매일매일 이런 식으로 ‘내일은 누구 차례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선 누가 백기사이고, 누가 하이에나이고, 그리고 누가 바보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나름대로의 현실 분석을 바탕으로 최선의 대안을 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는 의도와 달라지기도 하지만.

다이먼, 눈독 들이던 회사 잇따라 꿀꺽

덩치 불린 이들

루이스 BOA 회장, 세계금융 제왕으로 부상
돈 냄새 맡은 그레이켄, 메릴린치 자산 인수
재팬 머니는 발 빠르게 모건스탠리에 투자

 ◆구원투수 다이먼=한번 물을 먹어본 그였다. 1998년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눈앞에 두다 샌디 웨일 씨티 회장에게 버림받은 제임스 다이먼. 그가 이젠 JP모건체이스 회장으로서 월가의 소방수로 등장했다.

올 3월 미국 5위 IB인 베어스턴스를 파산 위험에서 건져낸 것도, 자금난에 빠진 미국 최대 저축대부업체 워싱턴 뮤추얼(와무)을 인수한 것도 그였다. 이걸로 그는 미국 금융 당국에게서 점수를 단단히 땄다. NYT는 “미국 금융 당국의 긴박한 구조 요청에 다이먼이 신속히 대응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그가 자선사업을 한 것은 아니다. 상업계 투자은행(IB)인 JP모건에 베어스턴스와 같은 증권계 IB는 기울어진 중심축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루이스의 BOA 제국=‘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인물’. 뉴욕 타임스(NYT)는 미국 3위의 IB 메릴린치를 삼킨 케네스 루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회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메릴린치의 인수로 BOA가 전통적인 상업은행 영역을 뛰어넘어 IB와 자산운용을 거느린 초강자로 군림하게 됐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BOA와 합병한 노스캐롤라이나은행에 1969년 입사해 2001년 회장에 올랐다. 미국 금융계에서 그는 ‘M&A(인수합병) 머신(기계)’으로 통한다. 2003년 프릿보스턴 파이낸셜을 인수해 지점 수를 늘리더니, 2005년엔 신용카드계의 강자 MBNA까지 삼켰다. 올 1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비틀대던 미국 최대 모기지업체 컨트리와이드를 40억 달러에 사들인 데 이어 메릴린치까지 장악한 것이다. 메릴린치가 45%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고개 든 재팬 머니=“일단은 노(No)다. 그러나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9월 19일 모건스탠리가 출자와 대출을 요청해 왔다는 보고를 받은 구로야나기 노부오(畔柳信雄) 미쓰비시UFJ 사장은 조심스럽고도 신속한 사냥을 시작했다. 일단 제의를 튕겨도 급한 쪽은 모건스탠리였다. 21일 “출자만이라도 해 달라”고 요청하자 구로야나기 사장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지주회사 이사들과 긴급회의를 해 다음날 OK 사인을 했다. 모건스탠리의 지분을 최대 20%(9000억 엔 규모) 매입한다는 것이다.

노무라 홀딩스의 와타나베 겐이치(渡部賢一) 사장도 마찬가지. 그는 리먼의 일본 법인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다음날인 17일부터 리먼의 사업부문 인수에 나섰다. 사내 2인자인 시바타 다쿠미(柴田拓美) 부사장에게 극비 지시를 내려 사들일 만한 사업부문을 선정했다. 노무라는 22일 밤 리먼의 아시아·태평양 부문을 2억2500만 달러에 인수키로 하고 다음날 이를 공식 발표했다. 또 리먼의 유럽·중동 부문은 단돈 2달러에 낙찰을 봤다. 바클레이즈 등과의 인수 경쟁에서 와타나베와 시바타가 던진 카드는 리먼 직원들의 고용 보장이었다. 일본식 발상이 인수전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돈 냄새 맡은 그레이켄=“세계적으로 그 사람만큼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도 드물다.” 외환은행 매각 작업에 관여했던 국내의 한 금융사 간부가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을 두고 한 말이다. 올 7월 말 그레이켄은 쓰레기와 다름없다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메릴린치의 부채담보부증권(CDO)을 67억 달러에 사들였다. 액면가 307억 달러짜리를 약 5분의 1 값으로 후려친 것이다.

월가에선 그레이켄의 도박에 가까운 투자 덕분에 메릴린치는 리먼처럼 급격하게 무너지지 않고 BOA와 매각협상에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때 모건스탠리에서 일했던 그레이켄은 텍사스 출신의 거부 로버트 배스의 후원으로 95년 론스타를 창업했으며, 하이에나식 기업사냥으로 고수익을 냈다.

◆리먼을 나눠 갖다=지난해 네덜란드 최대 은행 ABN암로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로버트 다이아몬드 영국 바클레이즈은행 회장은 이번 M&A 시장에서도 찬밥이 될 뻔했다. 그는 리먼을 거의 인수할 뻔했지만 미국 정부의 보증 불가 방침으로 영국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그러나 막판 역전 기회가 남아 있었다. 이미 파산신청을 한 리먼의 우량 자산만 싼값에 사들이는 방법이었다. 결국 다이아몬드는 리먼의 미국 법인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김준현·조민근 기자



‘특급 소방수’ 테인, 메릴린치 결국 못 구해

체면 구긴 그들

 ‘24시간 만에 94년 역사의 회사를 팔아버린 인물’. 월스트리트 금융사에 존 테인 메릴린치 회장은 이렇게 기록될지도 모른다.

리먼브러더스 인수와 관련해 미국 정부의 보증 불가 방침이 확인된 9월 12일(현지시간). 리먼의 파산신청이 확실시되자 테인은 메릴린치의 운명도 머지 않았음을 감지했는가 보다. 13일 오후 테인은 리먼과의 인수협상을 철회한 케네스 루이스 BOA 회장과 만났다. 그로부터 24시간 뒤 테인과 루이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테인의 결단으로 메릴린치는 리먼과 같은 파산의 길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에겐 ‘메릴린치의 마지막 회장’이란 불명예가 영원히 따라다니게 된 셈이다. 구원 전문가인 그가 1회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오게 된 것이다.

골드먼삭스를 IB에서 은행 지주회사로 바꾼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먼삭스 회장의 명성에도 슬슬 금이 가고 있다. 지난해 말 메릴린치·씨티 등 경쟁사들이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면서 경영진을 해고할 때만 해도 그가 이끄는 골드먼삭스는 순이익을 내며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가 지난해 골드먼삭스에서 받은 돈은 무려 6870만 달러. 월가 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AIG가 무너진 게 큰 화근이 됐다. NYT에 따르면 골드먼삭스는 모기지 관련 채권을 대량으로 보유했던 AIG의 가장 큰 파트너였다. “우리는 안전하다”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AIG의 유동성 위기에 불안을 느낀 고객들이 돈을 빼기 시작하면서 골드먼삭스에도 위기감이 고조됐다. 결국 블랭크페인은 다른 금융사와 합병하거나 은행으로 전환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헨리 폴슨 미 재무부 장관에 이어 2006년부터 골드먼삭스의 CEO를 맡은 블랭크페인은 M&A 중재 등 전통적인 IB 업무보다는 주식·채권 거래, 자기자본투자 등에 치중했다.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다 자리마저 흔들리게 된 경우도 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다. 그를 향한 비판의 핵심은 “부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리먼을 인수했더라면 나라가 거덜날 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 행장은 “부실이 모두 드러난 내년 2월에 우량 자산만 인수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항변했다. 정치권은 “물러나라”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그는 “한국 금융이 선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김준현 기자



월가 첫 흑인 CEO 오닐, 모기지 채권에 주저앉아

쪽박 찬 사람들

 “카리스마형 경영인이 지닌 지나친 자만, 그것이 리먼브러더스를 파산으로 몰았다.”

로이터통신은 리처드 펄드 리먼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물론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패자는 모든 오명과 누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해 이어 펄드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아쉬운 구석이 많다.

지난해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본격화한 이후 씨티 등 유수의 금융그룹은 세계 각지를 돌며 투자를 ‘구걸’했다. 그러나 그 행렬에 리먼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6월 이후 이들이 본격적으로 자금 수혈에 나섰을 때도 158년 역사를 가졌다는 자부심에서 펄드는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리먼 인수 협상 과정에서 펄드를 수차례 만났던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왔으면 리먼이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취임 해 월가가 최장수 수장이었던 펄드는 이렇게 본인은 물론 수많은 사람을 직장에서 내 몬 장본인으로 찍혀버렸다.

과욕과 욕심 때문에 파국을 맞은 월가의 거물들은 그외에도 많다. 메릴린치 역사상 최초로 흑인 출신 CEO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던 스탠리 오닐 메릴린치 전 회장, 찰스 프린스 씨티그룹 회장, 로버트 윌럼스타드 AIG 회장, 지미 케인 베어스턴스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모기지 관련 채권이 영원히 고수익을 보장해 줄 것으로 믿고 지나치게 많은 돈을 투자한 게 화근이 됐다.

반면 월가는 구제금융으로 국유화가 진행되고 있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과 같은 모기지 업체의 수장에겐 다소 동정적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월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패니메이 등이 비록 민영화돼 있었다고는 하지만 반관반민 형태였다”며 “그들이 모기지 채권에 대한 보증을 거부했다면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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